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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Dec 24. 2023

뉴질랜드 도로에서 경찰한테 잡혔다

뉴질랜드 로드트립 - 웨스트코스트

 내 자동차 보험료는 한 달에 달랑 2만 원이야. 중고차를 싸게 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버리자는 마음으로, 사고를 냈을 때 상대 차량만 수리해 주는 저렴한 보험에 가입했어. 사고가 아니라도 도난을 당한다거나 돌이 튀어서 유리가 깨지기도 한다던데, 운 좋게도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로드트립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차에 돈 지 않고 무사히 운전해서 다행이다" 그런 대화를 했지. 그리고는 사망 플래그처럼 차와 관련된 작은 사건이 생겨버렸어.

 출발할 때는 동쪽의 굵직한 도시들을 따라 내려갔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서쪽의 해안 길을 따라 올라오는 중이었어. '웨스트 코스트'라고 이름은 유명한데 볼거리가 많진 않았어. 험한 산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간간히 바다를 볼 수 있는 길이었지. 바다에는 쉴 새 없이 파도가 쳤어.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며칠 머물다 갈 만한 곳들이 꽤 보였는데, 우리 부부는 한 번도 서핑을 해본 적이 없거든. 바람이 부는 해변에 서서 거센 파도를 바라보는 건 20분으로 충분했어. 남편은 웨스트 코스트의 바다를 보면서 취향을 깨달았대. 파도 치는 바다를 보면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잔잔한 호수가 좋다나.

 우리는 가끔 등장하는 작은 마을들을 모조리 건너뛰고 계속 차를 몰았어. 뉴질랜드의 도로는 대부분 한 갈래라 길을 찾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우회로가 없다는 단점이 있어. 웨스트 코스트에 들어간 이상 파도 치는 바다가 좋든 싫든 끝까지 가야 했지. 머물고 싶은 곳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 하루 동안 거의 600km를 운전했어.



 그러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경찰차가 우리 뒤를 쫓아왔어. 우리나라는 큰 도로와 마을은 구분되어 있는 편이잖아. 아무리 시골이라도 좌회전, 우회전이라도 해서 마을로 진입하는 게 일반적인데,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은 고속도로 중간에 갑자기 등장해. 그러니까 시속 100km로 한창 달리는 중에 그 길 그대로 학교나 슈퍼가 나오는 거야. 속도 제한 팻말이 있긴 한데 그 시스템을 잘 몰랐어. 도로 곳곳에 팻말이 워낙 많아서 세세하게 신경 쓰지 못했거든.

 그래서 중앙선 건너에 있던 경찰차가 우리에게 손짓을 하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어. 유턴을 해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이쪽 방향에 무슨 신고가 들어왔나 보다'라고 태평하게 생각했지. 경찰차가 우리를 바짝 뒤쫓으면서 사이렌을 켜는 것을 보고서야 가까스로 차를 세웠어.

 왜 경찰을 보고 멈추지 않았냐는 게 첫 물음이었어. 우릴 부르는 줄 전혀 몰랐다고 했지. 시속 50 제한 구간인 마을에서 과속을 했다면서 속도 측정기를 보여주더라고. 우리 차의 속도는 55. 이 정도로 벌금 딱지를 받다니 괜히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객관적인 숫자가 있으니 어쩌겠어. "쏘리" 하며 수긍하는 수밖에. 과속 범위가 크지 않아서 벌금은 30달러였어. 큰 돈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한 달치 차량 보험료에 해당하는 돈이니 조금 속이 쓰렸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노란 팻말에 써 있는 숫자는 권장 속도지만, 빨간 원 안의 숫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속도래. 알고 나니 그제야 눈에 들어 오더라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운전했냐고? 한국에서 운전한 경력 증명서를 가지고 별다른 테스트 없이 얼레벌레 뉴질랜드 면허증을 발급받았거든. 이번 기회로 면허 시험이 왜 필요한지 체감했어. 늦게나마 도로 규정도 익히고 현지 면허증으로 딱지도 떼여 보니, 우습게도 뉴질랜드 찐 거주자가 된 기분이야.



오늘의 과학
 자동차의 순간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로 바닥에 20m 간격으로 센서를 심어 놓고, 자동차가 두 센서 사이를 지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동한 거리를 이동한 시간으로 나누면 속도가 구해지지요. 두 번째는 기계에서 레이저를 쏜 후, 자동차에 맞아 반사되어 돌아오는 레이저의 파동을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자동차가 기계를 향해 더 빨리 다가올 수록 레이저파에 더 자주 부딪히겠지요. 자동차의 속도가 빠를수록 반사되는 레이저의 파동이 촘촘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진동수(주파수)가 높아진다고 표현합니다. 기계에서 출발한 레이저와 반사되어 돌아온 레이저의 진동수를 비교해서 자동차가 얼마나 빨리 다가오고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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