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도 안 남았는데 결혼식장 잡을 수 있을까?
진정한 결혼 준비는 웨딩 박람회부터 시작된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가도 박람회에 가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장 시작해도 늦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우야무야 각종 예약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5월. 우리는 대강 11월쯤 결혼하자며 웨딩 박람회를 찾았다. 플래너 앞에 앉아서 한참 설명을 듣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에는 양쪽이 모두 놀랐다.
"??? 내년이 아니라 올해 11월이요? 웨딩홀은 잡으셨죠?"
"......웨딩홀이요?? 여기 와서 잡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요?"
마음 같아서는 결혼식을 생략해도 그만이었지만, 사실상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제일 쉽기 때문에 공장형 결혼식을 택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은 채로, 웨딩박람회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웨딩박람회는 스드메(웨딩 촬영 스튜디오, 드레스샵, 메이크업샵) 계약을 연계해 주는 것이 주 사업으로, 그 외의 것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웨딩홀 조건은 두 가지였다. 서로의 직장 일정을 고려하여 11월 셋째 주에서 넷째 주 사이로 날짜를 잡을 것. 양가 위치를 고려하여 서울 서쪽으로 장소를 잡을 것. 조건이 많지도 않았는데 웨딩 플래너의 답변이 오기까지 며칠 이상이 걸렸다.
그 와중에 갑작스러운 복병이 등장하는데, 바로 아빠였다. 어디선가 궁합을 보고 오더니, 11월 19일에 결혼을 해야 한단다. 당연히 조건이 좁혀질수록 결혼식장을 찾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아빠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넘겼다. 요즘 시대에 사주팔자가 웬 말이람. 아빠는 아빠대로 마음이 급했는지 내가 직장에 있는 시간에도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다. 가뜩이나 결정해야 할 것, 검색해야 할 것들이 수백만 가지인데, 근무 중에 아빠까지 연락이 오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남편은 엉엉 우는 나를 달래며 그냥 11월 19일로 날을 잡자고 했다.
그렇게 조건이 좁혀진 후에도 플래너는 엉뚱한 날짜를 추천해 주면서 우리를 절망에 빠뜨렸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스드메 계약을 성사시킬 땐 플래너가 목마른 자였지만, 웨딩홀을 찾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목마른 자였다.
간신히 상담 예약을 잡은 구로구의 ㅁ 웨딩홀은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같은 건물 지하에 있는 공연장에 스무 번도 넘게 갔었는데, 윗 층에 웨딩홀이 있는 줄은 몰랐더랬다. 1층에 대형 식자재 마트가 있어서 입구부터 번잡스럽고, 웨딩홀로 올라가는 길을 찾기 어려운 구조였다. 배추 더미를 실은 카트 옆에서 드레스 차림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심란해졌다.
ㅁ 웨딩홀 방문을 통해 내 취향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건물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ㅁ 웨딩홀에서 나오자마자 '단독 건물 결혼식장'을 검색해서, 당산에 있는 ㄱ 웨딩홀로 향했다. ㄱ 웨딩홀과는 사전에 약속을 잡지 못했지만, 분위기라도 구경하자는 심산이었다.
ㄱ 웨딩홀도 고급 예식장은 아니다. 그런데 ㅁ 웨딩홀과 비교하니 완벽해 보였다. 무턱대고 찾아갔는데 운 좋게 상담이 가능해서 견적서까지 받았다. 17시에 채플홀 계약이 가능하단다. 심지어 대관료가 무료였다. 비종교인이라 채플홀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다른 곳에 더 가볼 생각도 않고 바로 계약을 완료했다.
지나고 보니 1-2년 전부터 결혼식장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약간의 괴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장의 분위기, 형태, 위치, 날짜, 시간 등 여러 면에서 확고한 취향이 있다면 일찍부터 예약해야 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든 양보할 여지가 있다면 선택지는 항상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