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과학쌤 Sep 22. 2024

상견례는 생략 못하지

 결혼 준비 과정 중 생략하고 싶은 것 1위가 '상견례'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몹시 공감 가는 바였다.


 예비부부가 서로의 가족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돈끼리는 꼭 만나야 하는 걸까? 결혼식이 끝나면 평생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친척 간의 관계가 끈끈하던 대가족 시대에도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었을 정도이니, 요즘 시대의 사돈 관계는 더더욱 멀고 어색하기 하다.


 이러나저러나 상견례를 생략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기에, 남들 하는 대로 얼레벌레 사돈과의 어색한 만남을 추진했다. 색함을 풀기 위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한다던데, 우리는 식당에서 준비해 주는 백세주로 대신했다. '상견례 식당'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한정식집에서 '상견례 코스'를 예약하면 상차림 세트로 나오는 선물이었다.


 어색함보다 걱정되는 건 부모님이었다. 특히 당시 아빠는 딸의 갑작스러운 결혼 선언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딸 가진 아버지 특유의 마음으로 '누구를 만나든 내 딸아까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빠에게  주제로든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실 처음 만나는 부모님 입장에서 자식 이야기를 빼놓으면 할 말이 많지 않다. 상견례 자리에서 자식 자랑을 할 수도 없고 자식 흉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예의를 갖춘 몇 마디 외에 이렇다 할 대화 없이 어색한 식사가 이어졌다. 결혼식장도 이미 정해졌고 예단 같은 허례허식은 하지 않기로 하여 특별히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대화는 이것이다.


 "친정이 가까이 있으니 많이 챙겨주세요."

 신혼집은 친정 부모님 댁까지 30분, 시댁까지 1시간 거리다. 겉핥기식으로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던 중이라 이 이야기에도 "네. 허허." 정도로 대답할 줄 알았는데, 아빠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우리 애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 내가 늘 하는 말이 뭐지? 뜬금없는 반응이라 아빠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했다.

 "늘 '내가 알아서 할게.' 하니까 챙기질 못 해요."

 농담인 듯 진담인 듯 한 아빠의 발언에 다들 하하 웃고 대화 주제가 넘어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털어놓았다. 친정이나 시댁에 휘둘리지 않고 둘이 알아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댁에서도 그렇게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고. 견례의 의미는 못 찾았지만, 아빠의 마음이었다.

이전 04화 예복은 기성복으로 두 벌 샀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