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정되지 않은 어떤 마음

by 여행하는 과학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 만에 진실의 웃음이 만개했어. 바로 엑스머스에서.


서호주의 북쪽 끝에 위치한 엑스머스를 즐기기 전까지는 무덥고 황량한 서호주를 누군가에게 쉬이 추천해 주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어. 엑스머스로 향하는 동안 또다시 수백 킬로미터의 삭막한 도로를 달려야 했고, 태양이 작열하는 적도에 근접하게 다가가고 있었지.


항구 도시인 엑스머스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닝갈루 해안으로 유명해. 우리는 엑스머스 시내에서 쿼드바이크를 타고 해안을 따라 달리다가 산호초 근처에서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어. 이 쿼드바이크는 엄지손가락으로 엑셀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는데, 손가락을 조금이라도 떼는 순간 덜커덕거리면서 갑자기 멈춰버려서 운전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어. 보다 못한 가이드는 나를 맨 뒤로 보내버렸어.


대열의 뒤쪽으로 밀려난 덕분에 히려 여롭게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었어. 해안에서 만난 사람들도 하나같이 여유롭고 애틋했지. 이곳의 바다거북을 문신으로 새긴 소녀, 신혼여행지였던 이곳이 그리워 다시 왔다는 노부부, 전 세계 어디든 집이 될 수 있지만 이곳에서 특히 몇 달을 머물고 있다는 자유로운 커플.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서 다시 바라보니까 서호주가 사랑 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


쿼드바이크들이 줄지어 달리면서 만들어낸 모래구름, 오르락내리락하는 오프로드 옆으로 반짝이던 맑은 바다. 산호초 놀이터에서 먹이를 찾는 열대어와 아기상어, 절벽 아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틈새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바다거북. 그리고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든 순간이 나에게도 한 폭의 그림이고 한 편의 영화였어.


출처 : EBS 세계테마기행 서호주편


암컷? 수컷?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거북의 성별


닝갈루 해안은 열대 수역과 온대 수역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긴 산호초 덕분에 어마어마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해. 희귀종인 고래상어 떼가 번식하고, 다양한 종의 바다거북이 알을 낳는 곳으로 유명하지. 해마다 해안선을 따라 1만 개 이상의 바다거북 둥지가 만들어진다는데, 서로 다른 수역이 만나서 모래톱의 온도가 다양하기 때문일 거야. 온도는 바다거북의 성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


동물의 성별이 결정되는 방식은 다양해. 사람의 경우 성염색체의 종류가 중요하잖아. X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Y염색체를 가진 정자 중 어떤 것이 난자와 수정했는지에 따라서 여자, 남자가 결정되는 거지. 사람과 달리 개미는 성에 따라 염색체의 총 개수가 달라. 정자와 결합한 수정란에서 발생한 개미는 암컷, 미수정 난자에서 발생한 개미는 수컷으로, 암컷 개미의 염색체 수가 수컷 개미의 2배야.


바다거북은 더 특별해. 암수에 관계없이 염색체의 개수와 종류가 모두 동일하거든. 다만 외부의 자극, 그러니까 알이 부화하는 모래톱의 온도에 따라서 성별이 결정되는 거야. 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들은 항상 발현되는 것이 아니야. 주변의 온도, 세포 내의 단백질 농도, 외부 세포의 자극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서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다거북 알은 암컷으로도 수컷으로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모래톱의 두드림을 기다리는 거지.


여기,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어떤 마음이 있어. 그 결정을 돕는 것은 내면의 강한 외침일 수도 있지만, 외부의 힘 덕분일 지도 몰라. 바다거북 알을 품은 모래톱의 온도와 엑스머스를 향한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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