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아니라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아웃백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야. 인구 밀도가 워낙 낮은 서호주는 아웃백 지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마을을 찾아보기 힘든 허허벌판 천지거든. 어디로든 이동하려면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야 해서, 도로 근처 흙바닥에 앉아 코펠로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었어. 화장실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물도 라면도 최소한으로만 먹었어.
드물게 있는 몇몇 해안 도시를 제외하고는 서호주 어디나 허허벌판뿐인데, 내륙의 사막 쪽으로 들어가면 더 극한의 오지, 아웃백에 닿게 돼. 붉은 땅을 배경으로 호주의 중심을 향해 달리다 보면 표지판을 만날 수 있어.
"THE OUTBACK STARTS HERE"
우리는 그 경계에서 한두 시간을 더 달려서 숙소에 도착했어. 조와 켄 부부는 아웃백의 넓은 땅을 소유하고, 그 오지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 농장에서 작물을 기르고, 양 떼를 목축해서 양고기를 얻고, 캥거루를 사냥해서 양몰이 개에게 먹이로 주더라고. 그리고 때로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돈을 벌기도 한대. 조와 켄은 양갈비와 캥거루꼬리를 준비해 주었어. 말 그대로 갓 잡은 고기라 그런지 먹어본 육류 요리 중에 최고로 꼽을 수 있는 환상적인 맛이었어.
그들의 삶은 낭만적이었지만 나 같은 도시인에게는 쉽지 않아 보였어. 태양광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충분히 틀 수도 없고, 근처에 기지국이 없어서 휴대폰 통신도 아예 끊겼어. 물은 풍차를 돌려서 끌어올리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 아니기에 오래 씻을 수 없었지. 아니, 사실은 이 모든 것보다 더한 문제가 있었어. 서호주를 여행하는 동안 숙소에 출몰하는 각종 동물에 익숙해지는 중이었는데, 이곳에는 박쥐, 잠자리, 나방, 모기에 더해 개구리까지 살고 있지 뭐야?
처음 화장실을 이용할 때 변기에 떠있는 자잘한 곤충 시체 때문에 물을 먼저 내렸는데, 변기 커버 아래쪽에 숨어 있던 개구리 여러 마리가 워터슬라이드를 타듯 배수구를 향해 쓸려 내려가는 거야. 와우. 정신을 차려보니 미처 내려가지 못한 개구리들이 여전히 변기에 붙어 있었어. 한두 마리가 아니었던 거야. 개구리가 내 엉덩이로 폴짝 뛰어오를까봐 도저히 변기에 앉을 수 없었어. 개구리는 세면대 배수구에서도 얼굴을 내밀었어.
아웃백의 밤은 분명 아름다워. 붉은 대지 위로 내리는 석양이 온통 붉은 세상을 만들고 나면, 순식간에 새까매진 밤하늘에 별들이 빼곡히 차오르거든. 아웃백을 찾는 여행객들은 틀림없이 이 시간을 찾아오는 것일 거야. 이 고요한 낭만은 변기 속 개구리와의 눈맞춤을 견딜 용기 있는 자들을 위한 아웃백의 선물인 거지.
지구 역사의 한 순간을 담은 아웃백의 붉은 땅
아웃백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라 낯선 동물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덕분에 과거의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기도 해. 아웃백의 붉은 땅이 바로 그 과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물이야.
붉은 흙은 철을 포함한 퇴적물이 산소와 만나 산화된 거야. 오래된 철봉이 붉게 녹스는 것처럼 말이야. 실제로 지구 탄생 후 초기 몇 억년 동안은 대기에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붉은 퇴적암이 나타나지 않았어. 남세균의 광합성 덕분에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어느 정도 높아진 이후에야 붉은 퇴적암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한편 산소가 너무 충분해도 붉은 퇴적암은 쉽게 모습을드러내지 않아. 현재의 지구는 대기 전체의 산소 분압이 안정되어 있고, 깊은 바다 전체에도 산소가 충분히 녹아 있거든. 철을 포함하고 있는 퇴적물은 심해의 열수분출공에서 주로 만들어지는데, 만들어지는 즉시 바닷속 산소와 반응하게 되는 거야. 산소가 충분한 근래에는깊은 바다의 열수분출공 근처에서만 붉은 퇴적물이 쌓이는 거지.
그러니까 아웃백의 붉은 대지는 너무 먼 과거도, 너무 가까운 과거도 아닌, 지구 역사 중 어떤 특정한 시기만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산물인 거야. 변기의 개구리도, 붉은 흙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없는 아웃백만의 진귀한 경험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