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대는 반드시 온다”
아이의 생김새가 부모님을 쏙 빼 닮았을 때 흔히 ‘붕어빵’이라고 말합니다.
똑같은 틀에서 만들어지는 붕어빵은 매번 같은 모양입니다. 붕어빵처럼 아이는 부모의 얼굴형, 머리카락 색상, 체형, 손가락처럼 생물의 고유한 생김새와 특징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유전학을 자세히 공부하지 않더라도 아기의 생김새는 그 부모를 닮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이 등장하기 전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모와 자손의 전체적인 생김새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반면, 멘델은 유전의 문제를 정량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예를 들어 붉은 꽃과 흰 꽃을 교배시켰더니 자손으로 붉은 꽃도 나오고 흰 꽃도 나왔다면, 그 사실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몇 송이씩 나왔는지 개체수를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822년, 오스트리아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은 수도회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수학과 식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을 배웠는데, 수도원으로 돌아와 완두콩 유전에 관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이때 실험재료로 완두콩을 선택했는데, 이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완두콩은 1) 한 세대가 짧아 금방 자손을 볼 수 있고, 2) 대립형질(씨의 모양이 둥근 것과 주름진 것처럼 하나의 형질에 대해 뚜렷하게 구별되는 형질)이 육안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3) 개체와 개체를 임의로 교배시키기 쉬웠고, 4) 한 꽃송이에 있는 수술의 꽃가루를 같은 꽃의 암술에 묻혀 자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때 멘델은 완두콩의 뚜렷한 외형적 특성에 주목해서 수술의 꽃가루가 같은 꽃의 암술에 닿아 열매를 맺는 ‘자가수분’(self-fertilization)을 계속 시도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자손이 부모세대와 똑같은 형질을 지닌 ‘순종’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완두콩을 계속 자가수분해서 부모와 붕어빵처럼 닮은 자손을 얻자, 이번에는 꽃이 아직 어려 꽃가루를 만들기 전에 수술을 가위로 잘라 자가수분을 할 수 없도록 막았습니다. 그 다음 다른 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묻히는 ‘타가수분’(cross-fertilization)을 시도했습니다.
유전학 용어로 서로 다른 품종 사이에서 만들어진 자손을 ‘잡종(hybrid)’이라 하고, 타가수분은 ‘교잡(hybridization)’이라고 하는데요, 부모가 되는 식물을 ‘P세대’, 잡종 자손을 잡종 1세대(F1), 잡종 1세대 사이에 태어난 자손은 잡종 2세대(F2)라 부릅니다.
멘델이 처음 얻은 성과는 ‘우열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키 큰 완두콩과 키 작은 완두콩을 교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중간 크기의 완두콩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잡종 1세대들끼리 교잡을 시키자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교잡한 자손 중 키가 큰 것과 작은 것의 비율이 3:1로 나타난 것입니다. 실험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유전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멘델은 완두콩의 키를 결정하는 무엇을 양친에게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예를 들어, 한쪽에게선 키가 큰 유전형질(T)을, 또 한쪽에선 키가 작은 유전형질(t)을 물려받았는데, T가 우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손은 키가 큰 완두로 자란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키가 작은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 것일까?”, “유전은 되지만 숨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멘델은 첫 번째 실험에서 얻은 잡종 1세대(Tt)끼리 자손을 낳게했습니다.
이 결과, 잡종 2세대에서는 키가 작은 완두콩이 다시 나타납니다. 잡종 2대의 유전자형은 TT, Tt, tt로 1:2:1의 비율입니다. 여기서 큰 키의 완두콩이 우성이므로 키 큰 완두와 키 작은 완두의 비율은 3:1이 됩니다. 이처럼 한 쌍의 대립유전자가 분리되어 다음 대에도 유전되는 현상을 ‘분리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멘델은 완두의 여러 형질 중 ‘키’라는 한 가지 형질을 선택해 교배한 결과 이 형질이 우열의 법칙과 분리의 법칙에 따라 유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이상의 형질이 동시에 유전되는 경우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멘델은 순종의 둥글고 황색인 완두(RRYY)와 주름지고 녹색인 완두(rryy)를 교배하여 잡종 1세대(RrYy)를 얻고, 다시 자가수분해서 잡종 2세대를 얻었습니다.
이 결과, 잡종 2세대는 둥글고 황색, 둥글고 녹색, 주름지고 황색, 주름지고 녹색인 개체의 비율이 9:3:3:1의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대립형질끼리만 비교해 보면 둥근 완두와 주름진 완두의 비율은 12:4이고, 황색 완두와 녹색완두의 비율도 12:4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의 비율이 3:1로 잡종 1세대와 같습니다
이처럼 두쌍 이상의 대립형질이 동시에 부모에게서 자손에게 유전될 때 한쌍의 대립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예-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다른 쌍의 대립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예-색상을 결정하는 유전자)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유전되는데, 이를 ‘독립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멘델이 살던 시대에도 유전현상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부모의 혈액이 합쳐져 부모의 특징이 자식에게 물려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멘델은 평생에 걸쳐 225회에 걸친 식물의 인공교배를 통해 1만2,000종의 잡종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이 결과를 통해 유전은 막연히 부모의 유전자가 섞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입자에 가까운 물질이 있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멘델은 실험결과를 1865년 2월 8일 자연사학회에〈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멘델의 논문은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오늘날 그가 실험하던 교회 뒤뜰에 설치된 멘델의 대리석상 아래에도 이 말이 기록돼 있습니다.
결국 1900년이 되어서야 많은 과학자들(더프리스, 코렌스, 체르마크 등)에 의해 멘델의 연구결과와 똑같은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멘델의 연구는 ‘멘델의 유전 법칙’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