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중 겨울의 상징. 모든 근심을 물리치는 만파식적 - 대나무
사군자 중 겨울의 상징, 모든 근심을 물리치는 만파식적, 봉황이 먹는다는 이것의 열매.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대나무입니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시인인 윤선도의 <오우가> 중 대나무를 읊은 시조입니다. 대나무의 절개를 노래한 이 시조의 초장에서 윤선도는 대나무가 나무인지 풀인지 애매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나무가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일까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나무는 목질화 된 지상 부분이 일 년 내내 남아 있는 식물을 총칭합니다. 줄기에 있는 형성층의 세포 분열로 부피생장이 일어나 매년 줄기가 굵어지지요. 봄여름의 생장 속도와 가을겨울의 생장 속도가 달라 줄기에 나이테가 있는 것이 나무의 특징입니다.
나무는 보통 키에 따라 교목(큰키나무), 관목(작은키나무)으로 나무며, 잎의 모양과 생활 모습에 따라 침엽수(바늘잎나무), 활엽수(넓은잎나무), 상록수(늘푸른나무), 낙엽수(갈잎나무)로 나눕니다.
식물학적으로 볼 때, 풀과 나무의 결정적인 차이는 지상 부분이 언제까지 살아남아 있느냐 입니다. 나무는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살아 있는 동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풀은 1년 또는 겨울을 포함한 2년 이내에 지상 부분이 말라죽습니다.
풀에게도 형성층이 있지만 1년 이내로 성장이 제한되어 1~2년 사이에 말라죽습니다. 풀은 생활 보습에 따라 지상부와 지하부가 모두 말라죽는 1년초(한해살이풀), 겨울을 지나 이듬해 모두 말라죽는 2년초(해넘이살이풀), 지상부는 매년 말라죽지만 지하부는 몇 해 이상 사는 다년초(여러해살이풀)로 나눕니다.
대나무는 수십 년이 지나도 지상 부분이 남이 있고 줄기도 목질화 되어 있어 단단합니다. 그래서 나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형성층이 없어 매년 부피 생장을 하지 않아 나이테가 없습니다. 그래서 속도 텅 비어 있지요.
주면에서 흔히 보는 풀은 씨앗 또는 줄기에서 싹이 트고 잎과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리고 말라죽습니다. 이런 과정이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땅 속 줄기에서 어린 순인 죽순을 내고 며칠 사이에 10~20미터 높이로 자라고 다 이상은 자라지 않습니다. 이대로 수십 년을 사시사철 푸르게 삽니다. 보통 나무는 가지 끝에 겨울눈이 있어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지만, 대나무는 겨울눈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나무는 식물학적으로 보면 수십 년을 말라죽지 않고 사는 풀입니다. 대나무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30년, 60년 또는 100년을 삽니다. 참으로 길게 사는 풀인 것이지요.
풀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를 만들고 죽습니다. 대나무도 풀이므로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들고 죽습니다. 그것이 보통 수십 년 걸릴 뿐입니다. 살면서 매년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풀이 한 번 꽃을 피우고 씨를 퍼뜨리면 죽는 것처럼 대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기간이 길어서 꽃 피는 것을 쉽게 볼 수 없어서 그렇지 다른 풀들과 똑같습니다.
대나무 꽃을 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나무가 30년, 60년, 100년 등 사는 기간이 깁니다. 대나무가 꽃을 피웠다는 것은 이제 곧 죽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나무는 모여 살기 때문에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한꺼번에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대나무 꽃을 잘 보면 벼의 꽃과 닮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을 만드는 벼 말입니다. 이것은 대나무가 벼와 같은 벼과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과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개와 늑대가 모두 개과인 것처럼 말이지요.
대나무도 꽃을 피우기 때문에 당연히 열매도 맺고 그 속에 씨가 들어 있습니다. 대나무 열매는 죽실, 씨는 죽미라고 합니다. 쌀을 의미하는 미(米)를 붙인 것이 괜히 들어간 것이 아니지요. 대나무 꽃과 열매는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나무 열매는 전설의 새인 봉황이 먹는다고 전해지고 있지요. 그만큼 흔치 않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대나무 꽃을 직접 보거나 뉴스라도 들으면 대나무가 무수한 겨울에도 꿋꿋하게 절개를 지키며 살다가 이제 생애를 마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