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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Apr 16. 2018

0.1그램에 생명을 걸다!

순수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 마리 퀴리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어느 집안은 5개씩이나 받았습니다. 노벨 과학상 이야기입니다. 폴란드 태생 프랑스의 과학자 마리 퀴리의 가족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닌 모양입니다.


노벨상이 제정된 지 3년이 되던 해,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가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최초의 여성 수상자였던 마리 퀴리는 1911년 순수한 라듐을 분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는 노벨 화학상을 단독으로 받았습니다. 또한 이 부부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사위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가 새로운 방사성 원소의 합성으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하나도 받지 못한 노벨 과학상을 퀴리 집안은 다섯 개나 받게 된 것입니다. 


실험실에서 함게 연구하는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 Public domain(Wikipedia)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1940년대



미지의 광선을 찾아서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는 물리와 화학에서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시기입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원소가 발견되었고, 물질 내부의 구성 요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늘날 질병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하는 X선이나 여러 가지 방사선도 이 시기에 발견되었습니다. 그 시작을 알린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1845~1923)입니다. 1895년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아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광선을 발견하고 ‘X선’이라 했습니다. 뢴트겐은 이 공로로 1901년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896년에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1852~1908)이 우라늄염이라는 광물에서 X선과 다른 광선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베크렐선’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뢴트겐이 찍은 손가락의 X선 사진 Ⓒ Public domain(Wikipedia)


이 소식을 들은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는 또 다른 광선이 있을 것으로 믿고, 지루하고 긴 실험을 반복하여 우라늄보다 더 강한 광선을 내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원소가 폴로늄과 라듐입니다. 폴로늄은 마리 퀴리의 고국인 폴란드에서 따온 이름이고, 라듐은 빛을 ‘방사’한다는 라틴어 radius에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베크렐과 퀴리 부부는 이 공로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라듐 0.1그램을 분리해 내다

폴란드에서 가족과 함께. 마리아(맨 왼쪽), 아버지, 둘째언니, 셋째언니 Ⓒ Public domain(Wikipedia)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마리 퀴리의 본명)는 1867년 폴란드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시기였고, 폴란드에서는 여자가 대학을 가는 것도 금지된 일이었어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실직하면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가정교사를 하면서 프랑스에 유학 가는 있는 언니를 뒷바라지 했답니다. 먼저 둘째언니가 유학 가서 공부하고 나중에 언니가 마리아의 프랑스 유학을 돕기로 약속했던 것이지요.


1891년 마침내 마리아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에 입학했어요. 마리아는 수많은 남학생들과 경쟁하며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소르본대학에서 인생의 동반자이자 연구 동료인 피에르 퀴리를 만났습니다. 피에르 퀴리는 소르본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물질의 결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피에르는 결혼을 했고(이름이 마리 퀴리로 바뀜) 항상 함께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둘은 새로운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고, 폴로늄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방사능’아른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렇지만 순수한 라듐을 분리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라듐은 우라늄광석인 피치블렌드라는 광물 속에 미량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정제해서 라듐을 분리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피치블렌드 8톤을 가지고 퀴리 부부는 비가 새는 실험실에서 3년 이상 밤낮 없이 노력한 끝에 1902년 4월 20일, 0.1그램의 염화라듐을 분리해냈고, 1910년 염화라듐에서 금속 라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노력하여 얻은 결실 뒤에는 ‘남녀평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여자에게는 과학 연구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들 부부는 몸소 남녀평등을 실천했고, 이런 정신은 후대까지 이어져 딸 부부와 손녀도 과학자로서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라듐의 빛과 어둠


뢴트겐의 X선 발견 이후 베크렐은 방사선의 일종인 베크렐선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광선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X선을 이용하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몸속의 뼈까지 볼 수 있었고, 베크렐선 같은 광선은 감광작용을 일으키는데 감광작용은 어떤 물질이 빛을 받아 물질적으로 도는 화학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X선도 베크렐선도 모두 방사선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사선은 이용할 수 있는 영역이 넓기 때문에 당시 과학자들은 앞을 다투어 연구를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방사선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방사선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합니다.


라듐은 천연 우라늄보다 200만 배나 강한 방사선을 내는 강력한 방사성 원소입니다. 라듐은 발견 당시 암 치료에 사용되면서 방사성 치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로써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는 방사화학이 생겨났으며, 암 치료용 라돈 가스 생산, 중성자 생산에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또한 라듐은 형광작용이 있어 시곗바늘에 바르는 야광 도료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라듐이 인체에서 흡수되면 뼈에 칼슘 대신에 들어가 문제가 되기 합니다. 주기율표를 보면 라듐은 2족 원소들(베릴륨, 마그네슘, 칼슘, 스트론튬, 바륨)과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방사선 치료에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라듐을 분리하려고 수년 동안 라듐 방사선에 노출된 마리 퀴리는 결국 백혈병으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시곗바늘에 라듐이 섞인 페인트를 칠하던 미국의 젊은 여직공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라듐걸스’라고 알려진 이 직공들은 혀로 붓끝을 핥으며 미세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라듐 피폭이 된 것이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소송 사건이었으며, 이후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의 시작이 되었답니다. 라듐걸스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책으로도 출판이 되었습니다.


미국 라듐회사에서 시계의 야광판에 페인트 칠을 하는 여직공들 Ⓒ Public domain(Wikipedia)



순수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 마리 퀴리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했던 마리 퀴리는 라듐을 발견함으로써 암 치료는 물론 원자 내부 구조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축적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1903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마리 퀴리는 ‘라듐을 잘못 사용하면 위험한 물질이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과학의 성과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리 퀴리는 자신의 건강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열정으로 연구를 한 과학자의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마리 퀴리는 라듐을 분리해낸 것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는 라듐의 소유는 지구이며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라듐 방사선을 온몸으로 맞으며 연구한 마리도 결국 방사선 때문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명예 때문에 순수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마리 퀴리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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