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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Feb 06. 2019

이 나라의 대학교는 좀 많이 망해야 한다

고등 교육 서비스의 가치에 대하여

대학이 교육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다못해, 일부 대학이 포지셔닝하고 있는 '취업사관학교'의 역할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의문이다.


얼마 전 강남 영동시장에서 후배 3명과 술자리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 참가자들이 나빼고 다 고졸이었다. 모두다 훌륭한 친구들이고, 그중 한 친구는 내가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는 몇 안되는 인간중 하나다.


한 친구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를 다니다 자퇴했다. 지금은 꽤 이름 있는 기업에서 데이터 분석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학을 휴학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업체가 만든 앱의 MAU가 100만이 넘는다. 올해까지 휴학을 다쓰면 자동 퇴학이다. 마지막 한 친구는 대학교를 진학하지 않았다. 이 친구는 능력있는 PD다. 영상 무진장 잘 만든다.  


이 친구들이 대학에서 무엇인가 배워서 지금 일을 하고 있을까? 글쎄올시다.


물론 한국에서 대학은 이름 자체가 권력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스카이니까, 인서울이니까, 4년제 대학교니까,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수천만원의 학비는 졸업장 하나로 치환된다. 그러니까 교육 서비스가 아닌 '타이틀' 장사를 하고 있지.


대학 이름이 왜 권력이냐고? 그걸 방증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무크(MOOC)를 통해 전 세계 유수의 대학 교수 강연들을 '공짜'로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근데 한국에선 이게 활성화가 안된다. 왜 안될까? 여긴 타이틀이 주는 권력이 없거든. 물론 무크도 돈 내면 수료증 같은거 끊어준다. 근데, 한국에서 그걸 알고 있는 기업 인사 담당자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분명히 그렇다. 한 사람의 미래가 이 '타이틀'에서 갈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타이틀만 믿다간 좋은 꼴 못보는 사례 많다. 나도 인천의 하바드라 불리는 대학교 나왔다. 특히나 여기 물류학부는 특성화 학과로 입결로 치면 전국구급이다. 똑똑한 친구들 많이 들어왔지. 그 타이틀에 매몰된 인간들이 어떻게 됐냐고? 긴 말 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는 스카이고 나발이고 백수로 살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물론, 여전히 현실세계에 들어가면 대학 이름으로 파벌만들고 밀고 당기고 끌어주는 집단들이 꽤 있는데, '인맥' 형성용으로 보자면 대학은 썩 나쁘지 않은 수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건 도무지 아름답지가 않다. 학연지연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만연한 적폐다. 정작 능력 있는 인재의 진입을 막는 카르텔이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대학은 좀 많이 망해야 된다고 본다. 대학진학율이 70%에 달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가 없다. OECD 국가 중에서는 이미 최고치다. 이게 무슨 문제를 낳냐면 타이틀이 밥먹여줄 거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양성한다.


고딩때 X 빠지게 공부했으니 술쳐먹고, 놀러다니고 다 좋다. 나도 그랬다. 근데 그 사이 상응하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껍데기만 남는다. 그런데 껍데기만 있는 이들이 타이틀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들을 누가 받아줄 지 의문이다. 대기업은커녕 중소기업도 싫어한다.


근데 껍데기만 남은게 이들의 잘못일까. 이들은 대학에 들어가서 수천만원의 학비를 냈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것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의 몫이 아니던가. 지금 많은 대학들이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고용난, 대학생들은 취업난을 호소하는 이 미친 세상을 만든 주체가 누구인가 생각해보자. 이러면 또 나오는게 X소기업 프레임인데, X소기업도 좀 망했으면 좋겠다.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은 당연한 기업의 역량이다. 물론 지원자 입장에선 그걸 거르는 것이 실력이다. 제대로 정신 박힌 괜찮은 중소기업 꽤 많다. 그걸 대학에서 알려주진 못하겠지만.


어찌됐든 이 나라의 대학교는 좀 많이 망해야 된다. 타이틀 장사는 끝났다. 아니, 끝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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