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장 중요한 것은 취재다. 취재를 하지 않은 기사는 소설과 다름없다. 새롭게 취재를 하든, 과거 취재해서 쌓여있는 지식을 활용하든, 어쨌든 기자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직업이다. 쌓여있는 것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고, 써서도 안 된다.
2. 취재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문헌을 조사하거나. 가능하면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나 문헌 조사를 병행한다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것을 조합해야 한다. 나무위키나 다른 누군가의 글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곧바로 베끼는 짓은 하지 말자. 최대한 원출처에 가까운 문헌을 찾아 인용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지그재그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금융감독원의 공시자료를 지그재그 서정훈 대표의 인터뷰 내용과 함께 정리했다. 모든 사람의 기억에는 왜곡이 있어서 여러 문헌 자료와 서로 다른 이해 관계자의 또 다른 이야기를 함께 듣는 것이 글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3. 많은 기자들이 글을 쓰기 전에 ‘주제(기자말로 야마)’를 잡는다. 나는 아니다. 일단 직감에 따라 인터뷰 요청을 먼저 한다. 왠지 궁금하고 화제가 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있다면 일단 해당 내용을 잘 말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 요청하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정훈 대표에게 요청했다. 지그재그는 이커머스 업계에선 꽤나 화제의 기업이다. 잘 나가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다.
4. 1시간~1시간30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나면 대략 A4 사이즈 기준 10~15페이지의 무자비한 막글이 완성된다. 나는 인터뷰이의 거의 모든 말을 다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심지어 농담까지도), 분량이 꽤 많은 편이다. 이번 지그재그 인터뷰는 16페이지짜리다.
여기서 최대한 의미 있는 내용을 뽑아내는 ‘복기’가 선행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주제를 잡는다. 주제를 잡는 기준은 ‘화제성’이다. 바꿔 말하면 독자가 얼마나 궁금해 할 것이냐다.
5.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주제는 ‘패션 카테고리킬러 커머스가 돈 버는 이유’다. 제목은 <돈 버는 패션 이커머스, 지그재그의 비결>로 일단 잡아 놨다.
이 제목을 잡은 이유는 주말인데 회사 채팅방에 갑자기 주요 스타트업 공시자료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수많은 적자 덩어리 업체 중에서 2년 연속 ‘이익’을 본 지그재그의 실적이 눈에 띄었다. 돈 못 버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참 많은데,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할 것 같았다. 괜찮은 제목인가? 이거 나중에 바뀔 수 있다.
모 회사 선배가 토요일 저녁에 던진 이 자료가 내가 이번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지그재그 글 쓰다가 삘 받아서 이리로 넘어왔다.
6. 주제를 잡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하는 것이 글 전체의 아웃라인을 잡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글 전체의 틀을 짜는 것이다.
나는 소제목을 만드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번 글의 주제는 지그재그의 돈 버는 비결이니 먼저, 돈 못 버는 업체가 많은 와중 돈을 버는 지그재그 이야기가 상단에 배치한다. 그 다음에는 <이익 0원의 암흑기를 넘어서>, <돈 버는 비결 ‘데이터’>, <오퍼레이터의 가능성>이라는 소제목을 미리 정해서 박아 놨다. 굴곡 있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소제목 내용을 요약하자면 처음에는 돈을 전혀 못 벌던 지그재그가 광고 론칭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내용을 먼저 정리한다. 다음으로 지그재그 광고의 핵심 역량이라 볼 수 있는 데이터의 역할에 대해 쓸 거다. 마지막으로 지그재그의 미래 사업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구조다. 괜찮은 소제목인가? 이것도 나중에 바뀔 수 있다.
전자파 때문에 혼란한데, 대충 이런 식으로 인터뷰 정리본과 새롭게 쓰는 글창 두 개를 열고 쓴다. 혹시나 해서 한글 쓴다고 놀리지 마라. 은근히 좋다.
7. 간단히 제목을 정하는 팁이 있다. 제목은 가능하면 ‘주제’가 담는 의미를 포괄하는 것이 좋다. 첫문단의 내용 또한 가능하면 주제를 포괄하는 내용으로 작성하자. 그래야 글에 들어온 독자들은 원하는 정보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글의 제목은 <돈 버는 패션 이커머스, 지그재그의 비결>인데, 첫 문단에 블록체인의 미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끔찍하다. 물론 스타일에 따라서 이렇게 쓰는 글도 있는데, 중요한 건 절대로 사족이 늘어지면 안 된다. 그 사이에 독자는 도망간다.
8. 주제와 소제목을 잡았다면 글에 살을 붙인다. 이번에는 인터뷰이인 서정훈 대표의 이야기가 전체 살의 중심이 될 것이다. 16페이지의 인터뷰를 전부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것은 독자에게 가혹하다. 수많은 내용 중에서 주제와 소제목에 맞는 내용만 추려서 갈무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덜어내기’다. 욕심 때문에 취재한 모든 것을 다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글은 점점 더 지루하고 늘어지고, 핵심을 벗어난다. 차라리 쓰고 싶으면 다음에 쓸 다른 글에 재활용하자. 취재 자료는 언젠가 어느 곳에서든 다시금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글에는 하나의 취재 데이터를 중심소재로 사용했다. 사실 이 두 개 말고 다른 하나의 글에도 사용했다. 취재 내용이 아깝다면 2~3개 이상씩 쪼개자.
9. 서정훈 대표의 이야기만 나와도 글은 심심하다. 여기에는 내가 과거부터 쌓아온 모든 취재 자료가 결합될 거다. 굳이 금융감독원의 데이터를 끌어온 것도 그 때문이고, 돈 못 버는 기업의 대표격으로 쿠팡을 소환한 것도 그 때문이고, 돈 버는 기업의 대표격으로 이베이코리아를 소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건 서 대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글을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지그재그 이야기만 쓸 거면 당연히 지그재그 소속 마케터가 더 잘 쓸 거다. 괜히 그들이 잘 하는 판에 들어가서 힘 빼지 말고, 그들이 못하는 판을 만들자.
10. 글을 다 썼다면 당장 나가서 소주에 고등어회 한 점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지 모른다. 방심하지 말자. 이제 바로 막 쓴 글은 쓰레기다. 쓰레기를 읽을 만한 글로 바꾸는 게 퇴고다. 좋은 글을 쓰는 핵심 역량은 취재가 잘 돼 있다는 전제하에 퇴고를 많이 하는 거다. 앞서 (5)부터 (9)까지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글을 다시 읽고, 끊임없이 고치자. 자주 사용하는 어휘와 표현이 보인다면, 최대한 다른 어휘와 표현으로 바꿔보자. 이 과정에서 글 쓰는 실력이 는다. 나는 적어도 5~10회 이상 퇴고한다. 물론 누가 고등어회를 사준다고 하면 1~2번만 퇴고하고 그냥 나가기도 하는데, 이러면 다음날 내 글 보기 부끄럽다. 다시 한 번 고치게 된다.
11. 마지막으로 애써 글을 썼는데 따봉이 안 눌리면 슬프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도록 전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예컨대 이 글은 브런치에도, 나의 개인 페이스북에도 올라갈 것이지만 다음주 화요일 회사에서 쓰는 바이라인네트워크 뉴스레터에도 들어갈 것이다. 재탕은 콘텐츠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너무 복사붙여넣기만 하면 독자들은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채널에 따른 각색은 필요하다. 이걸 어려운 말로 하면 OSMU다.
12. 정말 마지막으로 밝히자면 모든 기자들의 글 쓰는 법은 각각 다르다. 그렇기에 나의 방법을 기자의 글쓰기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