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꼬리 대신 뱀머리
세계에는 일류대학과 그 외 일반대학이 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유럽의 명문대학은 해외에서도 엄지를 치켜올리는 가고 싶은 대학이다. 그들에게 대학은 공부를 더하고 싶고 유명한 교수의 탁월한 강의를 듣고 싶은 곳이다
대한민국엔 두 가지 대학이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대. 서울시내 지하철 2호선 라인은 많은 수업생을 둔 부모와 학생들의 꿈의 라인이 되었다. 그뿐인가, 다시 서울 내 대학은 SKY와 그 외의 서, 성, 한, 중, 경, 외, 시…웬만한 수업생과 부모님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순서들이다. 그럼 과연 한국민이 그토록 가고 싶은 SKY는 글로벌 차원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을까? 매년 발표되는 글로벌 탑 10, 탑 100위 랭크 대학에 몇 개가 들어가는가? 그리고 SKY 졸업생들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며 탁월한 지적 역량을 수행하고 있는가?
필자는 지방대 출신이다. 소위 내신 2등급의 공부 좀 한다는 모범생이었으나 그 날의 컨디션 난조(?)로 예상하던 점수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암담했다. 놀지 않고 했었는데.. 친구들이 한 번씩 하는 담배, 술 한번 안 마시며 말 잘 듣고 학교 생활에 충실했는데.. 요즘 재수는 필수지만 당시 80년대에 재수생은 한 번의 실패를 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빨리 집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점수로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먼저 부모님을 설득하고 선생님을 설득해야 했다. 나름 명분을 만들고 전망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처음으로 고민했던 시기였다. 부산 동아대학교 산업공학과 입학.
‘용꼬리 보다 뱀머리가 낫다’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 서울에 있는 산업공학과가 있는 대학을 지원해 볼까도 생각했으나 기숙과 자취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 대학은 동일할 거야 내가 하기에 달려있지, 여기서 열심히 해서 두각을 나타내자, 여기쯤이야…”
예상은 첫 중간고사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살면서 느꼈지만 어디서든 고수들이 있다. 거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 와서 공부 제대로 해 보겠다는 친구들이 스터디그룹으로 준비하는 시험을 혼자서 이길 수는 없었다. 독불장군이 없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처음 느낀 것 같다. 하지만 정신을 덜 차렸다. “나는 여기 있는 남과 달라 난 특별해, 난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을 해 볼 거야” 하는 생각에 KAIST 준비를 위해 수업을 빠지며 독학하기 시작했다. 학교생활, 교수님, 동기들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다. 현실 부정응자였던 것 같았다. 마음먹은 것을 이루지 못했다. 재능도 준비도 노력도 부족한 결과였다. 그렇게 나의 지방대 생활은 의미도 없이 낭만도 없이 지나갔다
‘용꼬리’ 이건 ‘뱀머리’ 이건 본인이 그 상황에 맞게 하기 나름이다. 인생에서 가장 처음 접한 시행착오를 통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본격적인 인생 최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