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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Apr 24. 2020

정말 가지고 싶었으나 가지고 나니 사용하지 않는 물건

물건을 사기 전에 생각해봐야 하는 질문이 세 개가 있다고 한다. 첫째, 이 물건이 없으면 곤란한가? 둘째, 이 물건을 정말로 갖고 싶은가? 셋째, 이 물건을 살 때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물건을 사면서 이 세 가지 질문을 모두 다 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가지고 싶었으나 막상 가지고 나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뭐가 있을까? 집의 곳곳을 둘러봤다. 그러나 잘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만 눈에 들어왔다. 안 되겠다. 휴대폰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물건 살 때 주로 이용하는 이베이 앱을 열어 과거 구매내역을 클릭했다. 손 세정제, 컴퓨터 잉크, USB 케이블, 침낭, 체중계 등이 보인다. 아마존 앱도 열었다. 대부분 킨들 전자책이다. 작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뭘 샀는지도 확인했다. 유레카! 드디어 막상 사고 나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세 개를 발견했다.


첫째 물건은 색소폰이다. 20대부터 가졌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2018년에 색소폰을 구매했다. 10개월간 색소폰 선생님 집으로 가서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열심히 색소폰을 불었다. 그 후 선생님이 한 달 반 동안 호주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갔기 때문에 레슨이 중단되었다. 레슨이 중단되니 색소폰 연습에 소홀해졌다. 선생님이 호주로 돌아오고 나서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꽤 먼 거리로 이사를 갔다. 예전에는 차로 20분이면 선생님 집까지 갈 수 있었는데, 이사한 집은 40-5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사무실이나 집 근처의 다른 색소폰 선생님을 찾아봤는데 마땅한 분이 없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색소폰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주중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회사 근처 카페에서 한 시간 가량 책을 읽었다. 그 때 맘에 드는 책의 구절과 내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아이폰 메모 앱을 이용했다. 휴대폰의 조그만 키보드는 오타가 많고 속도도 느려서 많이 불편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가 떠올랐다. 이베이와 아마존에서 열심히 검색을 했다. 휴대용 소형 초경량 키보드를 주문했다. 그러나 배송되어 온 키보드를 막상 써보니 데스크톱 또는 노트북 키보드에서 타이핑할 때에 비해서 만족감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우선 키보드 크기가 작고 키를 눌렀을 때의 감촉도 별로였다. 또한 이벌식 자판은 문제가 없지만, 내가 쓰는 세벌식 자판은 아이폰 메모 앱에서는 바로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별도의 앱을 따로 실행해서 내용을 작성한 다음에 복사해서 아이폰 메모 앱으로 붙여 넣기를 해야 했다. 처음 며칠간은 무선 키보드를 사용했다. 그 이후에는 가방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가방에서 퇴출되어 책꽂이 사이에서 그 위에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6년전에 아들과 나 단 둘이서 시드니 근교 블루마운틴에서 2박 3일 동안 46 km 코스 하이킹을 했었다. 물을 포함한 식량, 옷 그리고 텐트까지 배낭에 짊어지고 하는 야생 트레킹이었다. 비시즌이라서 다른 트레커들은 거의 없었다.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때로는 걸어가며 둘이 함께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근데 트레킹을 마치고나서 텐트가 망가지는 바람에 2인용 텐트를 새로 사게 되었다. 무게가 1.9 kg 밖에 나가지 않는 경량 텐트이므로 제법 비쌌다. 다시 아들과 함께 1박 2일 코스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 후 아들에게 다른 코스로 2박 3일 트레킹을 하자고 했더니 아빠 혼자 다녀오라는 시크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설득과 회유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이 만 15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더 이상 아들이 아빠와 놀아주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혼자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텐트는 쓸쓸히 창고에 처박혀있다.      


내가 정말 가지고 싶었으나 막상 가지고 나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봤더니, 물건 자체보다도 그 물건에 깃든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낑낑대다가 색소폰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났을 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조그만 키보드로 타이핑 했던 기억, 아들과 함께 걸으며 바라봤던 하늘과 나무. 귀하고 소중한 추억이다.




<2부 - 그 이후의 이야기>


위의 글을 쓴 지 석 달이 지났다. 지금 색소폰, 무선키보드, 텐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의 글을 쓴 그 날 저녁때 예전 색소폰 선생님한테 카톡을 보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줌(Zoom)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지 문의했다. 다행히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바로 다음 주부터 매주 월요일에 한 시간 레슨을 받기로 했다. 거의 일년 만에 다시 색소폰을 불었다. 운지법도 잘 생각나지 않고 소리도 영 별로였다. 하지만 레슨을 거듭하고 연습을 하면서 차츰 차츰 나아졌다. 다음주 월요일 레슨이 기다려진다. 색소폰은 다시 내 침을 듬뿍 먹고 있다.  


무선키보드는 바로 이베이에 중고로 팔려고 내놨다. 20 호주달러(원화 약 17,000원)로 올렸더니 2주일 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가격을 낮춰 15 호주달러(원화 약 12,750원)로 판매에 성공했다. 그 돈을 어떻게 할 까 고민했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제 3국가 사람들을 위해 Opportunity International 이라는 기관에 후원금을 보냈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며. 


창고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텐트를 꺼내 집 잔디밭에 펼쳤다. 그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텐트는 정말 오랜만에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바라봤다. 잔디밭 위에 쳐진 텐트가 내 맘을 설레게 했다.  


석 달 전에 위의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직까지 색소폰, 키보드, 텐트 위에 먼지가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힘을 다시 느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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