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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Apr 27. 2020

딸에게 보내는 편지

용서한다. 고맙다.

딸에게,


용서한다.

아기였을 때 하도 잠을 자지 않아서 매일 밤마다 한 시간씩 유모차에 태우고 온 동네를 방황하게 만들었던 것을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제부도에 놀러 가서 넘어지는 바람에 날카로운 바위에 얼굴이 찢겨 피가 나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을 

외국으로 여행 갔을 때 엄마한테만 자주 연락하고 아빠한테는 가물에 콩 나듯이 연락했던 것을

영국 스코틀랜드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왔는 데 너무 살이 빠져 얼굴이 정말 홀쭉해졌던 것을

가끔씩 사오정처럼 엉뚱한 소리를 했던 것을

귀가 시끄럽도록 청소하라고 잔소리했던 것을


고맙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를 보내는 예민한 시기에 한국에서 호주로 와서, 친구의 부재와 언어의 장벽 등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잘 극복해줘서

사진이라는 적성을 발견하고 미대에 입학해서 공부를 즐겁게 하고 있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일체를 엄마 아빠에게 하나도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있어서

자기 혼자만 잘난 게 아니라 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어서        

14 km 단축마라톤에 아빠와 함께 참가해줘서 

색다르고 맛있는 점심과 저녁식사를 차려줘서

이제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친구끼리 수다 떠는 것처럼 보여서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어줘서)


무엇보다도 내 딸로 태어나줘서  


많이 사랑한다. 

아빠가


2020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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