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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Jun 03. 2020

감정일기 - 셋째 날

쌍무지개 그리고 딸과의 아침 데이트

오늘도 딸은 어김없이 아침 6시 반 경에 반쯤 졸린 얼굴로 "아빠, 산책하고 올게"라고 인사를 하고 나서 산책하러 나갔다. 짧으면 40분, 길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산책이다. 딸은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대학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다녀온 후, 올 2학기 복학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 7시 10분쯤에 오트밀과 견과류로 간단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센 바람이 부나?' 하면서 창 밖을 내다보니 난데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비예보가 없었는데...... 딸은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뒷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휴대폰으로 딸에게 전화를 했다.


"슬~ 비가 많이 오는데 어디니?"

"아빵, 집까지 10분쯤 걸릴 것 같아요."

"그래, 알았다. 잘 오렴."


큰 골프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의 단풍나무 잎들이 점점 퇴색되고 있다. 가을이 끝나가고 있나 보다. '참 6월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가을이 아니라 겨울이네.' 앞집을 지나는 데 진한 나무 내음이 코를 거쳐 가슴속까지 느껴졌다. 앞집에서 며칠 전 큰 나무들을 잘랐는데 아직도 나무 내음이 공기 중에 퍼져있다. 비가 와서 그 냄새가 더 진해진 모양이다. 이 나무 냄새가 하루라도 더 오래가기를......


어디에서쯤 딸을 만날지 궁금해하며 딸의 산책코스로 걸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나니 마침내 멀리서 딸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을 흔들었다. 딸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가까이 온 딸과 함께 우산을 나눠 썼다.     


"아빵, 산책하는데 쌍무지개가 떴길래 아빠한테 보여주려고 사진 찍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비를 맞았네."


딸은 휴대폰을 꺼내 하늘에 쌍무지개가 걸린 사진을 보여줬다.


'슬, 그거 아니. 아빠한테는 네가 쌍무지개란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은 가슴에 남았다. 

 


오늘의 정서 단어: 사랑스러운, 행복한, 센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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