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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Jun 30. 2020

하루에 출퇴근 6시간

결혼 준비를 하면서 큰 고민거리에 부닥쳤다. 신혼 전셋집을 어디에 얻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춘천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내는 결혼 후에도 계속 같은 직장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신혼집을 어디에 구할 것인가에 대해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서울, 춘천 또는 그 중간인 청평이나 마석. 


서울과 춘천의 중간 지점에 집을 구한다면 아내와 나 둘 다 힘들므로 선택에서 탈락시켰다. 서울 집은 아내가 고생하고, 춘천 집은 내가 고생할 게 뻔했다. 그래 결심했다. 아내가 고생하는 것보다는 내가 힘든 게 낫지. 그때는 몰랐다. 실제로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시간표를 확인했다. 서울 용산에 있던 회사의 출근시각은 9시였다. 그 당시는 탄력근무제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직장생활 3년 차 사회 초년병은 출근 시각을 조정해달라고 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9시의 출근시각을 맞추려면 집에서는 늦어도 6시에 떠나야 했다. 6시에 집을 떠나서 택시를 타고 남춘천 역으로 향했다. 좀 더 일찍 나오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6시 딱 맞추어 집을 나오니 택시를 타게 마련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 기차를 타고 6시 20 분경 남춘천역을 출발하여 서울 청량리역까지 갔다. 지금은 춘천에서 서울까지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때의 통일호 기차는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청량리에 도착하면 8시 20분 전후였다. 서둘러 지하철로 갈아타고 회사에 도착할 때 사무실에 걸린 시계는 9시를 가리켰다. 6시에 집을 떠나 9시에 사무실에 도착하는 세 시간의 출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아침 이른 시각의 통일호 기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차의 한 량에서 혼자서 타고 간 날도 있었다. 기차에 올라타면 바로 앞의 좌석을 반대로 젖혔다. 그러면 네 명이 서로 마주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공간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다리를 척하니 펴서 다른 편 좌석에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꼴불견인데, 그때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침에 갈아 신은 양말이라 발 냄새는 안 났으리라). 기차의 넓은 유리창을 바라봤다. 그 유리창을 통해 사계절이 온.전.히. 천.천.히 느껴졌다.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여름에는 북한강의 시원한 강물이, 가을에는 빨간 단풍이, 겨울에는 간 밤에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회사에서 오후 6시쯤 퇴근하면 집에는 9시가 넘어 도착했다. 그때까지 아내는 저녁을 먹지 않고 나를 기다리곤 했다. 신혼의 신부는 이것저것 새로운 음식을 준비했다. 유튜브는 세상에 없던 시절이었다. 요리책을 들춰보거나, 장모님께 전화로 물어봐서 요리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요리가 있다. 밤 10시 넘어서 먹은 큼지막한 가지 튀김.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내 입맛에는 별로 였지만, 늦은 밤에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맛있다고 엄지를 들었다.


하루 6시간 출퇴근은 일 년 동안 계속되었다. 회식이 있거나 야근을 해야만 하는 날에는 결혼 전에 함께 자취하던 대학 선배의 방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결혼 일 년 후에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출퇴근 모두 합쳐서 20초 걸린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업무용 노트북이 있는 방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10초이다. 그 짧은 순간 계절의 흐름을 제대로 느끼는 건 불가능이다.  


누군가 다시 6시간의 출퇴근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대답은 당연히 "노"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은 만약 하고 싶다고 해도 허리가 아파서 못한다. 다만 기차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 온전히 느꼈던 계절의 흐름과 밤늦은 저녁식사의 추억은 다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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