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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Sep 21. 2020

나에게 보내는 편지

보람 있었던 일에 대해

유신아,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순간 생생히 기억하지? 난생처음으로 42.195 km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서 4시간 20여 분 동안 한 번도 걷지 않고 뛰어 결승선을 지났던 때를. 무릎에서는 통증이 몰려오고, 두 발은 남의 발 같기만 하고, 온몸의 힘은 모두 빠져나간 듯했지만, 가슴만은 벅차올라서 터져버렸을 것 같았지.


처음에는 5분만 뛰어도 숨을 헐떡대었는데, 하루하루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호흡이 편안해졌지. 처음 참가한 10 km 대회를 별로 힘들지 않게 뛰었어. 그 자만감 때문이었을까? 21 km 하프 마라톤 대회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고 참가를 했지. 힘들게 완주하고 나서는 한 쪽다리의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서 지하철 역 계단 옆에 있는 봉을 잡고서 간신히 뻐쩡다리로 내려가야만 했었지.


영하 날씨의 겨울에도 변함없이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채 날이 밝지도 않은 상태에서 뛰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길 위에 살짝 덮인 살얼음을 밟아서 미끄러지기도 했지. 그렇게 2시간을 뛰고 나면 모자 속 머리는 땀으로 젖어있지만, 뒷목의 머리 끝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지.


마라톤은 흔히 혼자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옆에서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어. 대회 참가시 길가에서 외쳐주는 누군가의 응원의 함성소리 덕분에 사라져 가고 있던 힘이 다시 생겼지. 가족들의 응원은 물론이고. 


힘들어 보이는 큰 목표가 있을 때 여러 개의 작은 목표로 나누어서 하나씩 해나가면 결국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 처음 5km 달리기로 시작해서, 10 km, 21 km 하프마라톤을 달린 후에 42 km 풀코스에 도전하고 성공했듯이.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서 다른 분들을 보고 놀라면서 많이 배웠지. 두 팔이 모두 없는 분이 나를 앞질러 가는 것을 보면서, 70대쯤으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분이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앞을 못 보는 분이 옆의 비 장애인과 끈으로 연결되어 함께 달리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완주할 수 있지만 아무나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주를 해내서 대견하다. 내가 마라톤에 도전한 것은 내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중의 하나일 게다. 혼자서는 절대 마라톤 완주를 못했을 거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 관심과 응원이 있었기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네가 죽을 때까지의 마라톤 여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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