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번에 탄 배는 최대로 승객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배였다. 승무원은 최대 1,500 명을 태운다고 하니, 단순 계산하면 승무원 1명당 승객이 3.3 명인 셈이다. 이렇게 많은 승무원들 덕분에 식당, 객실, 안내 데스크 등 배 안의 여러 곳에서 친절하고 편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크루즈를 마친 지금 돌이켜보면 기억에 제일 남는 것은 사람들이다. 제일 먼저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담당했던 한국인 승무원 에밀리가 떠오른다. 크루즈 둘째 날, 우리 가족은 친구 가족과 함께 뷔페에서 원탁형 식탁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까만 머리의 동양인 여자 승무원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얼굴에는 웃음을 짓고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우리에게 건넸다. 이 배에서 한국인 승무원을 마주친 적이 없기에 무척 반가웠다. 부담 없이 한국어로 승무원과 얘기할 수 있어서 심히 좋았다. 저녁 식사 때 에밀리가 근무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서프라이즈! 이틀 내내 주로 양식을 먹었기에 맵고 시큼한 김치 생각이 났다. 그런데 에밀리가 이 생각을 독심술로 읽었는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미리 김치를 먹고 싶은 지를 물어오는 게 아닌가? 덕분에 우리 가족은 김치를 원껏 즐길 수 있었다. 그다음 날 레스토랑의 예약된 테이블로 갔더니 김치가 넉넉하게 테이블에 미리 놓아져 있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의 도가니~
어느 날의 저녁식사 때였다. 아내가 실험 정신으로 발휘해서 생전에 먹어본 적이 없는 디저트를 시켰다. 근데 입맛에 맞지 않아 그 디저트를 거의 남겼다. 에밀리가 내 아내에게 다가오더니 혹시 다른 디저트를 원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내는 새로운 디저트를 맛있게 먹었다. 아들은 만 16살이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다. 메인으로 스테이크를 시켜서 모두 다 먹고 나서도 배가 차지 않았다. 혹시 조심스럽게 메인을 하나 더 시켜도 되는지 에밀리에게 물어보았더니 흔쾌히 추가로 주문을 받았다. 아들은 복 터진 날이었다. 에밀리가 있었기에 우리의 저녁식사 시간은 더욱 즐거웠다.
다음으로는 서비스 데스크에 근무했던 친절한 직원이 떠오른다. 크루즈 여행이 4일 정도 남은 무렵, 방에서 뒹글뒹글대다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보니 우리 가족이 크루즈에서 사용한 경비 내역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예약을 일찍 했기에 객실당 $ 100을 배 안에서 맘대로 쓸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근데 객실 두 개중 하나는 정상적으로 크레딧 $ 100 이 들어와 있었는데 다른 객실은 어떻게 된 일인지 크레딧이 없었다.
서비스 데스크에 내려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크레딧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영어로 설명을 했다. 근데 담당 승무원이 내 객실 정보를 조회하더니, "한국분이시네요"라고 웃으며 한국어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제야 그 승무원의 옷에 달려있는 태극기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로열 캐리비언 본사로 전화를 해서 알아보더니, 나를 담당했던 여행사에서 제대로 입력이 되지 않아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시스템에서 꼼꼼히 확인을 해줬다. 물론 나중에 여행사로부터 $100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방 정리를 해주던 조엘. 객실 앞 통로에서 만날때마다 서로 환하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는 매일 저녁마다 수건으로 원숭이, 토끼, 새 등을 만들어서 침대 위에 장식을 해줬다. 덕분에 저녁 무렵 객실에 들어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장식이 우리를 반길까'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뷔페에서 항상 밝은 미소로 음료를 가져다주던 중국인 직원도 생각난다. 보통 크루즈 승무원은 한 번 배를 타면 4~6개월 동안 휴가 없이 계속 일한다고 한다. '크루즈 승무원도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구나' 그 대신 그 후에 꽤 오랫동안 내륙에서 휴가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 많은 크루즈 승무원들 덕분에 안전하고 즐겁게 크루즈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에밀리는 지금 어느 바다에 떠 있을까? 그녀와 다른 승무원들이 모두 건강하고 즐겁고 보람 있는 삶을 매일매일 누리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