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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Jun 11. 2018

호주에서의 첫 결혼식

벌써 호주에 살기 시작한 지 7년 여가 지났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오히려 주말이 더 바쁜 듯 느껴졌다. 주말에 결혼식, 돌과 같은 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혼식 같은 행사에 한국처럼 많은 하객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친한 사람들만으로 소규모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인 성당에서 나와 같은 소모임에 계신 분에게 첫 결혼식 초대를 받았다. 결혼식은 시드니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헌터 밸리라는 유명한 와인 산지에서 열린다고 하였다. 호주에서의 결혼식은 어떨까? 궁금하고 설레었다.


푸른 잔디로 뒤덮여 있는 골프장 옆에 아담한 예배당 같은 건물이 보였다. 문을 여니 진한 나무 향기가 콧속으로 흠뻑 들어왔다. 소박하지만 군데군데 꽃 장식이 눈에 띄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은 평화로웠다. 


결혼식은 내내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신랑 신부는 물론 없었다. 식장 주변의 푸른 잔디와 나무들은 하객들이 도심의 바쁜 생활에서 잠시만이라도 멈추고 하늘을 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결혼식은 3시에 시작해서 4시경에 끝났다. 


결혼식 후에는 야외에서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취향대로 맥주, 와인, 샴페인 등을 즐기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몇 그룹은 한 손에 술을 들고 서서 대화를 즐겼다. 또는 푸른 골프장을 바라보는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웠다. 무려 2시간 동안이나. 


6시가 되어서야 저녁식사와 공식 피로연이 시작했다. 피로연장으로 들어가니 각자의 자리가 예쁜 이름표와 함께 지정되어 있었다. 신랑 신부 측 모두 합쳐서 약 80명이 참석했다. 신랑 신부가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입장하고 하객들에게 인사했다. 이어 신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신랑 신부에게 축하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신부 어머니는 의외로 씩씩했지만, 신부 아버지는 눈물을 적시며 잠시 동안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신랑 친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한 한국 친구들과 호주 친구들의 영상 메시지가 큰 스크린에 흘러 나왔다. 신랑은 씩씩하게 답사를 했고, 신부는 눈물을 흘리느라 답사가 중간중간 끊어졌다. 


피로연장 한쪽 구석에서는 포토존이 설치되었다. 슈퍼 마리오 모자나 허벌나게 큰 노란색 플라스틱 안경 등을 쓰고 즉석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하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신랑 신부,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모두 함께 하는 댄스파티도 있었다. 피로연은 3시간 동안 진행되어 9시에 끝났다. 저녁을 먹으며 소화시키면서 여유 있게 즐기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빨리빨리 결혼식을 치르는 게 아니어서 참 좋았다. 파란 하늘, 푸른 잔디와 나무가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신랑 신부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이 마이크를 잡고 축하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신랑 신부가 답사를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딸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이렇게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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