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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Sep 25. 2018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다

마침내 2018년 9월 16일 마라톤 대회날의 아침이 밝았다. 10년 만에 다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순간 그리고 지난 3개월간 훈련했던 기억들이 머리 속으로 휙 지나간다. 제1형 소아 당뇨 치료 연구기금을 위한 펀드레이징도 좋았다. 좀 무리하게 연습했는지 무릎에 부상이 생겨, 당초 계획보다 훈련의 양이 적었다. 30 km 장거리를 최소 한 번은 뛰어야 하는데, 26 km까지밖에 못 뛴 것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허나 마음에 있는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냥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잘 뛰면 잘 뛴 대로, 못 뛰면 못 뛴 대로 만족하자. 혹시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중간에 뛰지 못하면, 걸어서 완주하면 되지.'


7시가 되자 42 km의 마라톤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구박을 받아가며 휴가를 낸 딸에게 손을 흔들며 결승선에서 만나자고 외치고 출발지점을 향해 이동했다. 출발선을 통과하면서 손목시계를 00:00:00으로 맞추고,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기온은 10도쯤 되어서 약간 쌀쌀했지만 마라톤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신기했다. 휴대폰을 한 손으로 들고뛰는 사람들이 꽤 눈에 띄었다. 멋진 배경이 나오면 돌아서서 셀카를 찍는 것이 아닌가? 기록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사진 찍기에 바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교차했다. 스파이더맨, 슈퍼맨, 슈퍼마리오 등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서 하도 많이 봐서 별 감흥을 못 느꼈다. 근데 등 뒤에 50 번째 생일이라고 써붙이고, 하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뛰는 사람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지나치며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면서 보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25 km 쯤에서 나와 속도가 비슷한 Cathy와 함께 달리게 되었다. 작은 키와 체구이지만 경쾌하게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로 인사를 하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꽤 한참을 달렸다. 이렇게 대회에서 만나는 인연도 소중하다.


10년 만의 마라톤이지만 훈련을 체계적으로 한 덕분인지 30 km를 지나도 몸의 상태가 괜찮았다. 예전 마라톤에서는 30 km 나 35 km 지점에서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35 km를 지나고 있는 데도 컨디션이 괜찮았다. 38 km 지점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38 km를 지나니 이제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1 km 만 더 가자. 그래 1 km만 더 가자.' 40 km를 지났다. 도로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니 힘이 생겼다. 마지막 500 m 정도는 오페라 하우스 가는 길 양쪽으로 사람들이 빼꼭히 서서 힘찬 박수와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성큼성큼 결승선을 향해 뛰었다. 그곳에는 예쁜 딸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완주 메달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을 달성했다. 3:49:55.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음료를 나눠주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힘이 되는 동료 달림이들, 주로 상에서 멋진 음악을 연주해준 분들, 처음 보는 나를 큰 목소리로 응원해주는 분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딸과 가족들. 펀드레이징에 동참해 준 분들, 나의 마라톤을 응원해주신 지인 분들. 참 감사하다.


다음 마라톤을 뛸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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