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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Feb 26. 2016

[박유신의 호주 이야기 7]외국계 기업문화에 적응하기3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라테와 비슷한 Flat white를 한 모금씩 즐기면서 이 글을 쓴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80-90년대 팝송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옆 테이블에서는 여자 두 명이 쉴새 없이 쏼라쏼라 영어를 쏟아내고 있다. 가끔은 한참 동안 서로 동시에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짙게 떠있다.


이번에는 외국계 기업문화에 적응하기라는 제목의 마지막 글로서 사내 결재시스템과 매트릭스 보고 체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인수합병 전에 회사에서는 사내 의사결정문서인 기안서를 관리하기 위해 사내전자결재시스템을 운용했다. 모든 기안서는 팀장, 부문장, 사장 등의 결재 라인과 협조부서를 거쳐 시스템상에서 결재가 완료되고 보관되었다. 필자의 처음 직장에서는 전자결재시스템 없이 종이 문서로 기안서가 작성되었는데, 결재라인에 무려 7개의 싸인란이 있었다. 기안자, 과장, 부장, 이사, 전무, 부사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장. 추가적으로 결재 사안에 따라 협조부서와 감사실도 경유해야만 했다. 결재가 중간에서 반려되면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결재라인을 거쳐야만했다. 그래서 최종결재를 받기까지는, 순차적으로 수직적으로 결재라인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인수합병후에도 한국지사에서는 전자결재시스템을 이용했지만 중국&북동아시아 지역본부 또는 미국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메일로 의사결정을 할 때,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수신자로 지정하고, 의사결정사항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참조자(cc)로 지정해서 이메일을 공유하고, 이메일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한 후 마지막으로 의사결정권자가 결정을 내렸다. 직급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동등한 입장에서 활발하게 때로는 공격적으로 자신의 논리와 의견을 피력하고 또한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쿨하게 수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자기의 상사와 미리 논의하고 상대방과도 사전 협의를 거쳐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해 놓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수평적으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은 인수합병후의 충격중의 하나였다.


인수합병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중국&북동아시아 지역사장의 승인이 필요한 안건이 생겼다.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부서 인력 충원에 관련되었던 것 같다. 그에게 관련내용을 이메일로 보냈는데, 그로부터 단 한 줄로 “Approved”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을 받은 날 저녁때 그와 함께 한국지사 임원들과 회식자리가 있었다. 그때 그에게 승인메일 이외에 추가로 어떤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그 승인 메일이 끝이고 다른 것은 필요없다고 얘기했다. 황당하고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고 빠르게 최종 결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반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메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 또한 단점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메일의 특성상 의사결정사항이 각 직원 개인의 이메일박스에 남으므로 체계적인 보관 및 검색이 어려웠다. 직원이 회사를 떠난 이후에 그가 진행했던 의사결정사항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매트릭스 보고 체계

회사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합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나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전에 회사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되다. 위협? 기회? 이라는 제목으로 이와 관련해서 포스팅을 했었다. 인수합병 소식에 이어 실사를 거친 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큰 기회가 주어졌다. 필자가 한국지사의 IT전체를 총괄하는 이사로 승진한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및 운영, 프로젝트 관리, 데이터센터 그리고 보안 등 IT의 전략, 개발 및 운영 전반을 책임지게 되었다.


승진이후에 한국지사의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General Manager(GM)와 영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IT Vice President에게 양쪽으로 보고를 하게 되었다. 당시 인수합병한 회사는 외국계기업에서 흔히 있는 매트릭스 보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IT, Finance, Legal 등의 조직은 본사에서 주요 원칙과 방침에 대해 통제를 받으면서 아울러 한국지사의 GM에게도 보고를 하는 구조였다.


이런 매트릭스 보고체계를 경험하면서 처음에는 무척 번거롭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인수합병전에는 한 명의 보고자에게 결재를 받으면 되었는데, 이제는 양쪽 모두의 결재를 받아야만 하니 힘들었다. 때로는 GM과 IT Vice President간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 중간에서 샌드위치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매트릭스 조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첫째, 각 보고자에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GM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고, IT Vice President는 Global IT 관점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동일 안건에 대해 GM에게는 비즈니스 측면을 강조해서 얘기를 하고, IT Vice President에게는 Global IT 측면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배웠다. Business와 IT의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둘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는 세계화를 의미하는 Globalization 과 지역화를 의미하는 Localization을 합성한 단어로 소니의 창업자가 만들어 낸 신조어이다. 본사의 IT관련 Global 방침이 종종 한국지사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IT 성숙도, 조직의 구성 및  규모 차이 등으로 인해 Global 방침을 한국지사에 적용하면 기대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일도 꽤 있었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한국지사 현실을 고려하여 한국 GM과 협의해가면서, 선택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Global IT 방침을 적용해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Global IT조직에는 “One size does not fit all” 이라고 외치면서.


셋째, GM과 IT Vice President간에 이견이 있는 경우 이메일보다는 가급적 회의를 잡아서 함께 토론하고 결론을 내도록 노력했다. 간단한 사안이라면 이메일이 효과적이지만, 이견이 큰 경우에는 회의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메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수평적인 의견토론 및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매트릭스 보고 체계하에서는 두 명 보스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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