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그 후.
퇴사를 하고 맞는 첫 평일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맞는 퇴사 첫 평일, 퇴사 1일 차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켜는 일이었다. TV를 30분 정도 보면서 믹스 커피를 타서 마셨다. 그리고 베란다에 있는 사이클을 30분 정도 탔다. 베란다에서 밖을 바라보면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 내가 저 사람들 속에 있었다는 게 이상했다.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씻고 난 뒤늦은 아침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하고 나면 무료한 오전 시간이 찾아왔다. 아침에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원래 집에서 무언가를 잘하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보통 9시 30분이 지나 있었다. 그러면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 집 근처 운동장으로 나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운동장을 뛰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11시. 씻고 잘 준비를 하면 11시 30분이 됐었다. 그랬던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시간은 무척 어색했다. 이 시간이 저녁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더욱 어색했다.
"나가자"
집에 있는 다고 하여 없던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도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았다. 무슨 일이 생기려면 밖에 나가야 한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다고 하여 사실 특별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고 조금 멀리 나가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노트북으로 평소 관심 있던 분야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한 정도였다.
오전 11시. 지하철을 탔다.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건 오랜만이었다. 주말에도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진 않았다. 또 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평일과 주말은 느껴지는 게 다르다. 주말은 모두가 쉬는 날이고, 평일은 그렇지 않다. 평일 오전 11시의 지하철엔 젊은 사람 대신 노인들이 많았다. 저 노인들은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걸까? 저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 책이었다. 올해는 이 분야를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나름의 글도 쓰며 생각을 정리하자고 작년부터 마음 잡았었다.
책의 한 챕터를 다 읽을 즈음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했다. 특별히 가려고 정해놓은 곳은 없었는데, 버릇이 있는지 익숙한 역에서 내렸다. 출근할 때도 종종 내리던 역이었는데, 집 근처 역에서 책을 읽으면 한 챕터를 다 읽을 즈음 이 역에 도착하게 됐었다.
"어디로 가지?"
마땅히 갈 곳을 정해놓은 게 아니어서 어디로 갈지 망막했다. 그러다 예전에 우연히 한번 갔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카페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카페를 찾았다. 가장 만만한 게 스타벅스였다.
사실 나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커피 자체가 맛이 없다. 이번에 간 이유는 마침 선물 받은 기프티콘이 있어서였다. 만약 없었다면 스타벅스보다 싼 이디야 커피나 그보다도 더 산 메가커피나, 컴포즈 커피에 갔었을 것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텀블러에 한 잔 주세요. 마시고 갈게요."
커피를 받고 찜해놓은 자리에 앉았다. 창문 쪽이었는데, 내 옆에는 기자가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기자인 줄 안 이유는 전화 통화를 하며 스스로를 기자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는 모양이었다.
'다들 열심히 구나.'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남들이 일하며 앞서 나갈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퇴사 1일 차에 이런 생각이 들다니. 제대로 쉴 줄 모르는 것 같아 나 자신이 잠깐 한심하게 느껴졌다.
'너 이제 고작 1일 차야.'
스스로에게 말하고 지하철에서 읽은 책을 조금 읽은 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해 글로 남긴 뒤 기지개를 켰다. 2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유튜브를 조금 보다가 카페를 나왔다. 내가 오기 전부터 일을 하던 기자는 내가 나갈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카페를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검푸른 하늘이 진해지고 있었다. 지하철로 터벅터벅 향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듯 롱 패딩을 걸친 직장인들이 보였다. 그중 누군가는 뛰었고, 누군가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으며, 누군가는 밝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건물을 지났다. 건물은 사람의 얼굴이 반사될 정도의 유리로 되어 있었다. 반사된 얼굴의 내 모습이 보였다. 마치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내일은 뭐할 거야? 아니 뭘 해야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