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하나의 세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by 레이

코로나 시기에 <패왕별희>를 스크린으로 처음 봤다. 두지와 시투가 유년기를 희생해 최고의 경극 스타로 군림하다가 세상이 변하면서 찬란했던 빛을 잃고 스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예술중학교를 가고 싶어서 학교도 가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맞아가며 그림만 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학대인데 그 때는 그게 학대인 줄도 모르고 맞았다. 입시에 실패했을 때 나는 좌절했고, 세상을 잃은 슬픔을 맛보았는데 그게 당연했다. 그 때는 그 좁은 세계에 갇혀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니까. 두지와 시투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극한의 자리를 얻었지만 그 댓가로 그 세계에 갇히는 형벌을 받았다. 그래서 그 세상이 무너졌을 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지 못하고 스러지고 만다. 나는 내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갈 다리를 선물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문과 출신 개발자의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


개발 일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업의 특성상 언젠가 다시 공부해야 할 걸 알았다. IT업계는 다른 업계보다도 훨씬 빠르게 진화하는 세계였다. 그 속도에 발맞출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고개를 들어 변화하는 지점을 계속 바라는 봐야했다. 문제는 나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업무량이 많은 부서로 전배가 됐고, 죽어라 일을 해야 겨우 데드라인을 맞출 수 있었다는 거였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시점에 다뤘던 시스템은 이미 유행이 지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업무량이 많아 무슨 기술이 핫한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흘러 유학의 결심은 옅어져 갔고,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업무 강도가 약해졌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얼마나 낡은 세계에 몸담고 있는지 파악이 됐다. <패왕별희>를 텅 빈 극장에서 집중해서 보고 나서 나는 어린 시절 갇힐 뻔했던 세계를 떠올렸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고 해서 그 세상에 갇히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리버풀 대학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비전공자용 석사과정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나에게 9년간의 개발 경력이 있을지라도 나는 근본없는 개발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론의 부족은 언제나 내 발목을 잡았고, 설령 내 발목을 잡는 게 이론의 부족이 아닐지라도 자가 귀인의 지점이 됐다. 그래서 공학 기초 과목으로 이루어진 첫 학기는 나에게 일종의 안정감을 선사했다. 익숙한 내용임에도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수업들. 분명히 들어본 것들인데 점수로는 수치를 주는 과제들. 수업당 서너개의 과제가 나왔는데, 수업 하나로 치면 많은 양이 아니지만 네 과목이 되면 거의 매주 과제가 있는 셈이었다. 도서관에 가보면 항상 아는 얼굴들이 보였고, 그러다 결국 다들 모여서 과제를 하곤 했지만 여럿이 한다고 과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나의 첫 학기는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고, 첫 학기의 절반 가까이가 지나도록 런던 한 번을 가지 못했다.


개발 9년차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프로그래밍 과목에서 아쉬운 점수를 받기도 했고, 데이터 과목은 헤매기도 했으며, 문과출신이 맞나 싶게 연구 방법론 수업은 싫어하기도 했다. 미적분 수업은 결국 EBS에서 강의를 찾아가며 이해하기도 하고 모르는 문제는 공대 출신인 친오빠에게 SOS 요청을 보내 해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AI를 사용하지 않고 프로그래밍 과제를 끝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고, sql의 기본 원리를 배우면서 드디어 데이터의 기초를 깨달았다는 희열을 얻기도 했다. 연구 방법론 수업에서는 안좋은 추억을 만들었기에 별도로 한 장을 할애하겠지만 그만큼 영국이 어째서 선진국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된 수업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교육과정에서 제거되는 바람에 배우지 못했던 미적분은 어쨌든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는 데 감사하게 됐다. 생각보다 미적분이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수학문제 풀이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고등학교 시절 배우지 못한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낡은 세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학대와 폭력으로 얼룩진 두지와 시투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내가 갇혀 있던 세계가 일찍 무너진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화폭과 붓, 물감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고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세계를 만날 수 있었기에 나만의 기준을 갖고 세상에 대한 시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왼손은 손바닥이 빨개져라 맞던 시절이 계속되었다면 나는 그게 아동학대라는 걸 평생 몰랐을테고, 데이가 그랬듯이 나도 다른 아이들을 학대하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맞았던 세월이 학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마음 속에선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부모조차도 폭력으로 자녀를 훈육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왜 나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몰랐던 걸까.


개발자로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대학원에 대한 악소문은 무성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교수라는 직종에 대해 학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건 그들이 얼마나 좁은 세상에 갇혀 있는지였다. 내가 겪은 일도 있지만 들은 소문은 더 엄청났다. 대학에서 교수가 갖는 권한은 대단히 막강하고, 그렇기에 교수들은 교직원과 조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행정 직원이지 교수의 개인 비서가 아님에도 교수들은 나에게 행정 업무를 넘어서는 것을 요구하곤 했다. 거기다 본인들이 제대로 메일을 안 읽어놓고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을 하기 일쑤였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전이라 그 때는 그냥 교수들에게 맞춰주는 게 맞나보다 하고 대부분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줬고, 워낙 이메일을 많이 받고 바쁘신 분들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긴 적도 많았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는 그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변명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메일은 회사원들도 많이 받았고, 메일을 잘못 읽어서 생기는 문제는 송신인이 아니라 수신인의 책임이었다. 학계는 워낙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자신의 알량한 권력을 가지고 조교들을 협박하는 게 가능했지만 IT업계는 지독하게 넓어서 부서가 안 맞으면 최악의 경우 책상을 엎고 이직하는 것도 가능했다. 한 세계에 갇히는 것도 싫었지만 그 세계가 좁은 건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다. 종종 유학을 간다고 하면 국내 대학원을 가지 왜 비싼 돈을 주고 해외로 가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신랄하게 대답했다. 국내 대학원은 교수 따까리하는 곳이지 공부하는 곳이 아니야. 내가 직접 만나 경험해본 교수들은 높은 확률로 자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일상 생활에서도 알게 모르게 비상식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영혼이 더러워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개발자로 일하던 시절에도 사내 괴롭힘을 경험하면서 분명히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던 분들도 모두 내가 옳지 않은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 때는 다들 그 세계에 갇힌 것처럼 누구 하나 나를 위해 나서서 막아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그 세계 안에 갇힌 것과 다를 게 뭐지. 내 세상이 스스로 무너져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너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갈 준비를 했다. 무섭고 두렵기도 했고 지금도 내 선택이 옳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세상이 변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세상을 찾아볼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세상이 화폭에서 모니터로 바뀔 수 있다면, 모니터에서 다른 무엇으로도 충분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패왕별희>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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