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멜랑콜리아>는 사실 내가 햇병아리 씨네필 시절에 우연히 보게 된 영화다. 감독 이름은 익숙했지만 잘 몰랐고, 감독보다는 주연 배우들인 커스틴 던스트, 샤를로트 갱스부르,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에 이끌려 봤었다. 그 때 학교 안에 있는 예술 영화관에 이 영화가 우연히 걸려 있었고, 어디선가 좋은 영화라는 말은 주워들어서 별 생각 없이 봤고 이해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이후에 라스 폰 트리에가 문제적인 영화들을 만드는 감독이라는 걸 알게 됐고, 우울증을 겪었던 이들에게 인생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2011년작이니 당시 나도 꽤나 우울했을 땐데 나는 깊이 생각하진 않았던 걸 보면 우울증 진단을 받을 만큼 우울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가 다루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우울함에 집중하고,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후반부 장면에 대해 감독만의 색채라고 평가하며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것보다는 영화 어딘가에서 주인공 저스틴이 언니 클레어에게 세상은 결국 멸망할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클레어가 어떻게 아냐고 묻자 저스틴은 대답한다. 그냥 안다고. 그 때 저스틴의 얼굴에 떠오른, 체념한 듯하면서도 초월한 듯한 표정은 아직까지 기억에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외국에 다시 나갈 걸 알고 있었다. '다시'라고 하는 이유는 대학시절 이미 교환학생으로 외국생활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년간 달콤씁쓸한 해외생활을 해봤던 나는 해외 생활에 대한 로망도 기대도 없었지만 언젠가 내가 어디론가 떠날 걸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게 언제, 어디인지를 몰랐을 뿐이었다. 부모님조차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나의 교환학생 준비와 유학 준비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셨다. 나에게는 오빠와 여동생이 있는데, 이 둘이 해외생활을 하겠다고 했다면 부모님은 아마 놀라셨겠지만 내가 한다고 했을 때는 언젠가 올 것이 지금 왔구나, 라고 반응하셨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치 저스틴이 알았던 것처럼 그냥 알았다.
저스틴이 세상이 멸망하는 과정까지 알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리버풀로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세상을 휩쓸면서 미국이 아닌 영국으로 가게 될 줄도 몰랐고, 그게 리버풀이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내 친구들은 네가 마침내 개발자 인생을 접고 영화 공부를 하러 떠나는구나, 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나는 스스로가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인공지능과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한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조차도 회사원이 되고 처음 몇년간은 돈을 모아서 금방 하고 싶은 공부(시나리오 석사 과정을 정말 밟고 싶었다)를 하러 다시 외국에 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고, 그래서 우울증 초기 진단을 (드디어) 받았고, 내 손가락과 손목 관절이 망가졌고, 겨우 여유가 생겨 유학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내 발은 다시 국내에 묶였다. 그러면서 극장은 어려워졌고, 엔데믹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도 영화 산업은 사양산업으로 변해가며 내가 꿈꾸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나를 맞이했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가 등장하면서 앞으로 영화 산업이 변할 거라는 예측은 있었지만 코로나가 등장하면서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코로나 직전 한국 극장산업은 그야말로 호황 아니었던가.
어렸을 때 꾸던 꿈을 이루는 사람도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꿈꾸었던 삶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보통은 삶에 지쳐 꿈을 꿀 여유조차 사치로 느끼고,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꿈이 계속 변하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 물정을 모르고 마냥 순진하던 시기에 꾸었던 꿈이 가장 순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내가 사는 현실도 변하고, 무엇보다 나의 경험이 계속 축적되면서 꿈이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중학교 때 많은 친구들이 선생님을 꿈꾸었는데, 아마 당시에 학생 신분으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볼 수 있는 직군이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보고, 세상엔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직업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장래희망이 변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니 사실 대부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기는커녕 상상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직감적으로 아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마음 한 켠에서는 내가 언젠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느낌이다. 다만 언제 어떤 분야에서 무슨 글을 쓸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알았던 작가는 소설 작가 아니면 방송 작가였고, 고등학교 때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자를 꿈꾸기도 했었다(체력적인 이유로 빠르게 단념했다).
회사를 다닐 때 선배의 중학생 자녀가 학교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조사하면서 해당 분야의 종사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수행평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중학생 때 저는 개발자가 될 줄 몰랐는데 뭐가 될줄 알고 벌써 장래희망을 조사하냐고 농을 쳤다. 그러자 선배는 나에게 되물었다. 대학교 땐 알았니? 나는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면서 개발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건 허를 찌르는 화답이었다.
나는 개발자가 되어서도 언젠가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놓고 회사 10년 다닐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고, 그건 현실이 됐다.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뭔가 알긴 알았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외국에 갈 걸 알았지만,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갈지는 전혀 몰랐다. 저스틴의 우울증은 어쩌면 세상이 멸망할 걸 알았기에 그 무엇을 해도 달라질 게 없어 생겼는지 모른다. 그와는 달리 나의 우울증은 내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 생긴 것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직장 내 괴롭힘과 끝날 것 같지 않던 업무, 그리고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나의 경력은 내 발목을 붙잡아 어딘가에 나를 가두려고 했다. 나는 나의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영화관으로 도망을 쳤고, 주중에 사무실에서 죽어 있는 대신 주말에 극장에 가서 살아보려고 했다. 나에게 영화관은 인셉션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꿈의 세계에서 머문들 월요일은 돌아오고, 스크린 밖의 세상이 다시금 나를 쫓아온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냥 알았다.
그렇게 나는 현실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언젠가 갈걸 알았던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기에 미접종자 입국 금지였던 국가들을 제외하고, 여러가지 선택지 가운데 영국이 남았다. 나는 아주 오래 전 영국에서 잠시 살았고, 영국 리버풀로 유학이 확정되었을 때 마치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몰랐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