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 한 자락, 밤새 잠 못 든 무거운 눈꺼풀을 매단 채 오후 느지막이 집 밖을 나섰다. 포근한 바람이 내게 안겼다. 윈스턴이 빅브라더를 사랑했듯, 이런 날이면 아무리 증오했더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은 인지할 수 없는 세뇌일까? 어쩌면 아무 부작용이 없는 마약? 아니, 어쩌면 자연이 주는 달콤한 속삭임. 초록빛 우주 안을 유영하는 자유로움. 마치 우주의 주인공이 된 듯.
‘잘 자요’라는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맞다. 잘 잔다는 것, 혹은 누군가가 잘 자기를 바라고 그 바람대로 누군가가 잘 자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쉽게 여길 일이 아니다. 적막한 우주 속에서 홀로 헤매는 외로움. 가득 참 속 텅 빈 공허함. 한 줄기의 빛이라도 비친다면, 그것은 주황빛 밤 불일뿐이다. 우리에게 안심과 외로움을 주는 고독한 빛. 그저 적막한 우주를 더 적막하게 만들어주는 까마득한 항성.
잘 잔다는 것은 이 적막한 우주를 벗어나 초록빛 우주를 유영하는 것이다. 주황빛 밤불이 포근한 바람이
되는 것이다. 증오가 사랑이 되는 것이다. '잘 자요'라는 말은 나의 사랑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 아닐까?
그날 밤 내 눈꺼풀을 밀어내리는 무게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자연이 주는 달콤한 속삭임이, 자장가라고 불리는 나만의 우주에서.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