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앤드류에게 브렉싯이란

난 앤드류가 좋았다.

by Scribblie

앤드류라고 이름을 막 부르기엔 그는 정년 퇴임 직전의 할아버지 직원이었다. 그 나이쯤 되면 관리자일 거라 생각하는 게 보통 한국적 상황이겠지만, 앤드류는 평직원이었다. 영국에서 관리자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좀 더 개인의 선택에 가까웠다.


예의 가득하면서도 친절한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말을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어쩌다 나누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친절함에 그리고 에너지까지, 난 앤드류 할아버지가 좋았다. 크리스마스 런치를 하러 가는 길에 정년도 얼마 안남았는데 시큐리티 패스를 잃어버려 다시 만든 이야기를 투덜거리며 털어놓아준, 햇살 눈부셨던 그 길, 그 장면이 오늘 점심 때의 일 같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 시크릿 산타​ 카드의 한 마디가 또렷이 그를 대변해 준다. “You will never get old” 앤드류는 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직장 외에도 청년 인큐베이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직무 관련 세컨잡이 불법이 아닌가 보다. 하긴, 그런 걸 불법으로 하기엔 먹고 살기가... 고용시장의 실태가 너무 팍팍하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주면 나라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


어느 날 팀 회의를 시작하려던 때 약간의 짬에 잡담이 오고 갔다. 그때는 브렉싯이 어찌 될지 모르는, 노딜이 될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때였다. 앤드류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철떡 같이 영국인이라 믿었던 앤드류는 호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영국으로 넘어와, 아버지의 국적이 영국이었기에 그 국적을 물려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앤드류의 딸은 호주에서 태어났고 미국인 남편과 결혼을 했다. 영국에 머물고 있는 딸 내외와 손자는 지금까지는 영국에 머무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현재법 상으로는 앤드류는 호주에서 태어났기에 당장 딸에게 영국 국적을 물려줄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영국 국적은 자신에게 국한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딸, 사위, 손자 모두 영국에서 살고 있지만 영국 국적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영국인인 그는 브렉싯 소용돌이의 눈 안에 있었다. 그날의 회의스러운 앤드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다. 브렉싯이 진행될 때,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와서 첫 취업부터 지금까지 15년 간 영국에서만 일했던 레슬리는 “웬만하면 지금처럼 영국 거주자로 살던 사람은 머물 수 있게 해 줄 거야.”라며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웬만해선 비자를 지원해주던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돌려 돌려 비자를 만들어 취업한 인도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 어찌 되는 걸까.


지금쯤 앤드류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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