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없는 영국초등학교

이채로운영국학교생활

by Scribblie

어느 나라나 교과서가 있는 거 아니었나? 알고 보면 전 세계에 교과서가 있는 나라가 몇 없다나? 미국은 이렇게 한국처럼 교과서가 있다. 국정교과서는 아니어도 굵직한 몇 개 출판사에서 영어, 수학, 과학, 체육, 미술, 사회, 역사, 문학 등등 교과별로 학년별로 착착착 출간되어 있다. 그래서 한때(?) 영어 사교육 시장은 미교라 부르는 미국 교과서를 바이블처럼 했고, 대치동 같은 곳은 이마저도 미국 학년보다 빠르게 선행학습을 나간다.

미국 교과서들. 유명 영어유치원 교재로 유명한 Journeys가 발간되는 Harcourt, 대치동 영어학원 교재 A closer look으로 유명한 McGraw Hill 출판사


아이가 유치원도 졸업 못한 일곱 살에 갑자기 1학년 중반으로 편입해야 했기에 1학년이 어떤 걸 배우는지, 할 수 있다면 집에서 좀 교과서를 보고 적응을 해서 영국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도 교과서가 있지 않겠냐며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교보문고 영어 교과서 코너에 가서 찾아보기도 했다. 맞이한 결론은 영국은 교과서가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그 사실이 참 놀랍다는 마음만 안은 채로 영국에 도착하고 말았다. 현지에 가서 확인하니 정말 사실이었고, 설마 교과서는 없더라도 학교에서는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겠냐고 상상했다. 말 그대로 상상이었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고생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하교할 때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다음 주에 학교에서 할 내용을 미리 받아볼 수 있을까요? 집에서 미리 보고 가면 아이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이런 대화 안 통한다는 거 이젠 안다. 그날 곤란해 보이던 선생님 대답의 결론은 서점에 가서 나이에 맞는 문제집을 사서 보는 것을 권한다는 것이었다. 어디서나 학교가 중심이고 예복습을 충실히 하는 것이 첫째라 생각했던 지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부모 상담에 가서 워크북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날 선생님이 거의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게 내 영어 문제인가 싶을 정도로 이해하지 못해 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분도 아래 워크북을 보시면 무슨 수로 다음 주에 할 것을 손에 쥐어 줄 수 있겠나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수학 워크북
1학년 과학과 건강수업 워크북
영어수업 워크북


아이 영어를 늘게 한 네 가지 편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영국은 우열 교육을 한다. 우열 교육이자 동시에 절대 교육이 아니라 상대 교육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학년에 달성해야 하는 절대 기준치가 있기는 하나, 모두가 교육의 최대치를 향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없고, 잘하는 아이는 본인의 위치에서 성장해 가고, 못하는 아이는 또 그 위치에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으로 그 교과시간에 나갈 수업의 주제는 같고 수준도 비슷하겠지만, 모두가 같은 워크시트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아이가 이번에 하는 걸 봐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 담임선생님이 정하고 워크북에 붙이는 식이다. 특정 과목을 잘하는 아이가 지겹게 그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아도 된다. 근래 영국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들은 영어를 너무 잘해서 수업 시간에 배울 것이 없다며, 영어 수업시간에는 혼자 별도의 테이블에서 책을 읽게 한다고 한다.

영국이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한국인이었다. 실로 교사의 역량과 열정에 모든 것을 맡겨두어야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선생님과 학교를 참 잘 만나서 큰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평균적으로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균질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무척 학업 성취도가 안 좋던 동런던 한 학교가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만들고 그에 따라 수업을 한 뒤 학업 성취도가 엄청나게 좋아져서 총리도 방문했다던 다큐멘터리를 본 일도 있다.

영국이 교과서가 없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맨땅에 헤딩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수업 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옥스포드 출판사나 콜린스, 그리고 그 유명한 트윈클 같은 곳에서 발간해낸다. 선생님들은 그중 적합하다고 생각되거나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구매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편집해서 활용한다. 괜히 영국 교사들이 업무 과다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한 반 33명 정원인데 아이 하나하나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학습을 제공하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선생님이 아이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그 학년을 마무리하던 여름 성적표에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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