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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니 Aug 09. 2024

언어가 거칠어지거나 진부해지면, 삶은 그와 비슷해진다

인생 책이라 부르기 아깝지 않은 - 신형철 <인생의 역사>


이것은 혁명입니다. 


...

과장 좀 보태봤습니다. 왜냐면 저한테는 혁명과 다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통째로 흔들어 놓은 책입니다.


책을 좀 읽었다 하는 명사들에게 으레 이런 질문이 한번씩 주어지곤 합니다.

"인생을 바꾼 책 한권은 무엇이었나요?" 질문을 받은 이들은 곤란한 기색을 표하며 답하기 어려워 합니다. 

(간혹 있기야 하겠지만) 누군가의 인생은 책 한권으로 바뀌지 않고 그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인생 책'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별볼일 없는 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책이기 때문입니다. 

(*양귀자 작가님 <모순>에 나온, 제가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시는 문학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난해한 장르입니다. 한번,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볼까요.


교과서에 나온 시를 선생님의 해석에 따라, 단어에 밑줄치고 그 아래에 뜻(의미)을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이랬을까 싶으면서도, 시 독법이 이게 맞나 싶기도 한 겁니다. 

관련해, 2009년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최승호 시인이 수능에 자신의 시가 출제되어 풀어봤는데, 모두 틀렸더라는 것입니다. 


시에는 함축성이 있지요. 해석의 여지가 굉장히 많습니다. 읽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고요. 자기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도 시 읽기입니다. 앞선 문제는 의미와 그 뜻을 딱 하나로만 규정지어 발생한 일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는 차라리 시를 감상하고 느끼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는 어떻게 느껴야 하는 걸까요? 가장 알기 쉬운 방법은 (시 읽기를) 잘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겁니다. 제게는 그것이 신형철 평론가의 <인생의 역사>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텍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납작했던 시가 매우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 옮겨보겠습니다.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에 소개된 윤동주의 시는 <사랑스런 추억>이지만 내용이 너무 많아 그중 일부인 <쉽게 씌어진 시>에 관한 글을 가져와봤습니다. 한 장도 안 되는 이 대목에서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한 겁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와 비슷한 경험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 왜 읽어야 한답니까?


그래, 시라는 것이 좋은지는 알겠는데 왜 읽어야 하냔 말이죠. 

책을 쓴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시는 메시지이고 또 마사지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연마해온 말하기 기술을 동원하여
어떤 취지를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전달할 때의 시는
'언어를 통한 메시지'이고, 말들이 무슨 취지를 실어나르기보다는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배려하여 한 공동체의
퇴락한 말들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을 때의 시는
'언어에 대한 마사지'이다. 
시가 그토록 대단한가.
그렇다면 시는, 있으면 좋은 것인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소설과 영화와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면 시 역시 그렇다.
그러나 언어는 문학의 매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매체다.
언어가 눈에 띄게 거칠어지거나 진부해지면
삶은 눈에 잘 안 띄게 그와 비슷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계속 시를 쓰고 읽는다.
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바로 그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


이것은,, 정말로 예술입니다. 

주책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좋은 것을 좋다 말하지 어쩌겠습니까,,


사실 책은 작년에 읽었으나 이제야 글을 씁니다. 누구는 좋은 책에 관한 생각을 얼른 풀어놓고 싶다던데, 왜인지 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값진 책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책이 주었던 긍정적인 감정과 가치를, 못해도 절반은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책에 대한 애정이기도 합니다. 받은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일지도요. 


그래서 계속 묵혔습니다. 묵히다보니 어느새 1년이 지났더군요; 오래 묵혀도 더이상 나아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이제야 올립니다. 


작년에 다녀온 북토크에서 받은 싸인을 슬쩍 자랑해봅니다.




신형철 평론가님의 책을 읽으면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감탄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것이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는 단어의 정확함입니다. 

미묘한 차이를 뭉뚱그리지 않고 그 자리에 딱 들어맞는 정확한 단어는, 한치 틈 없이 잘 맞물린 정교한 나사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 좋습니다.


시를 잘 해석한다는 것만으로 누군가가 이렇게 좋아질리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글을 정말 잘 쓴다는 것도 있지만

신형철 평론가님 글에서 인간미가 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연민과 측은지심, 세상에 대한 애정. 이런 것을 가진 사람은 이 썩은 세상 속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뉴스 보면서 저 개XX들.. 욕하면서 인류애 박살났다가도 신형철 평론가님 같은 사람도 있지.. 하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이 샘솟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 덕분에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평론가님은 문학이 이런 기능을 한다고 말하지만, 제게는 신형철 평론가가 문학 그 자체입니다.


책 이야기로 시작해 저자 예찬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저자 예찬이 책 예찬입니다. 

'인생의 역사 = 신형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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