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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니 Sep 05. 2024

'남'에게 읽히는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


짧지 않은 시간 글을 써왔다고 하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지요. 

그래서 인스타와 브런치를 운영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도, 한참을 방황했습니다.

내 안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글만 쓰던 제게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는 

어떻게 나의 글을 써야 하는지, 길목을 밝혀준 책이었지요. 


이성복 시인의 글에 ‘살기'가 서려 있어야 한다고 표현했다. ‘아무리 그래도 살기라니…’하고 놀랐는데, 우려를 잠재우듯 살기는 ‘쓰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살기의 방아쇠가 자신을 향하면 재미로 작용한다. 하지만 타인을 향하면 ‘착한 글'보다 더한 부작용이 생긴다. 한 마디로 ‘못난 글'이 된다. (…)
 
살기의 방향을 나에게로 트는 글이란 나의 ‘흑역사'를 공개하는 일이다. 흑역사란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한 기억을 말한다. (…)
 
중요한 것은 자학이 아닌 능청스러움이다. 고해성사하는 죄인처럼 써서는 안 된다. “사실 나는 과거에 이러저러한 바보같은 행동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정색하듯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렇게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 한심한 인간이 거울 속에서 헤헤 웃고 있다.” 창피하고 무거웠던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풀어쓰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위로는 덤이다. 댓글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구나를 알게 된다. ‘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든든함,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읽고 쓰게 한다. 

- 11. 나의 흑역사 쓰기 中


나에게 누군가 “네 컵은 반이 빈 거니, 반이 찬 거니?”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방금 반을 마셨으니 반이 빈 거야!”라고 애써 논리를 만들어 답하지 않았을까. 소년의 대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난 컵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면 사각지대나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글쓰기에도 이런 무의식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물이 절반정도 들어있는 컵을 보고 ‘벌써 반이나 비었네.’하는 사람은 부정적이고, ‘아직 반이나 남았구나'라고 말하면 긍정적인 사람으로 흔히 묘사한다.
고민 없이 이를 인용했다면 게으른 처사다. 절반에 주목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자는 뻔한 다짐만 했을 터다. 여태까지 물음 자체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셈이다. 그런데 컵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니! 미처 생각지 못한 관점이다. (…) 

좋은 글이란 읽기 편하고 아름답게 가꾼 문장만이 아니다. 선택지의 벽을 허물고 무한대로 확장하는 글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양산하고, 알고 있는 것을 세뇌시키듯 반복 재생하는 글은 지겹다. 그동안 몰랐던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오늘의 필사 문장 같은 글이 좋은 글 아닐까.

- 14.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라 中


물론 나의 글이라고 해서 나만 읽는다는 생각으로 쓰는 건 아닙니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메시지는 넋두리’이니까요.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지 가상의 독자를 가정해야 합니다. 


처음 읽는 글에서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쓰기 합평을 할 때 “저는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니라…” 이런 말이 자주 오가는 연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독자의 머릿속으로 안전하게 옮겨지면 참 좋으련만, 뒤집히거나 훼손되어 도착할 때도 있다.
오해를 줄이려면 타깃을 좁혀야 한다. 불특정한 대중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하고 말한다. 대상(읽는 사람)의 연령대나 배경 지식을 고려해야 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서술하면 오해의 여지가 줄고 이해하기도 쉽다.
나는 퓨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를 만족하게 하려는 의도는 음식 고유의 풍미를 떨어뜨린다. 한국식으로 순화된 똠양꿍을 먹을 바에야 김치찌개를 먹는 게 낫다. 야채 호떡을 사 먹느니 군만두를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욕심은 결국 한 사람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 3. 내 글을 책임지는 법 中


그런 의미에서 이 리뷰 글의 독자는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설명을 조금 덧붙이면

에게만 의미 있는 글이 아니라

에게도 의미 있는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지요. 


그래서인지

분명 글밥(선영) 작가님의 이야기였지만, 나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로 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면

<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로 그 내용을 조금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달까요. 

배운 내용의 구체적인 예시(?)처럼 느껴졌지요. 


여기서는 잠시, 글쓰기 대신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송 생활 하시면서 겪은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방송 작가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메인 작가를 하기 전에 방송을 그만둔 저는 어떤.. 열등감과 걱정 같은 게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나약해서 나가떨어진 게 아닐까, 뭐든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인간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뭐 그런. 

실패한 커리어를 가진,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요. 


물론 지금은 당시 결정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내심,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다는 불편한 마음이 남아있었지요.


그런데 방송 작가로 13년 일하신 작가님에게도 그 환경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던 겁니다.

제가 제게 보냈던 책망 어린 눈길을 거두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메인 작가님 길을 걸으신 작가님도 멋지고

제 길을 간 저도 멋집니다(?)




다른 책 읽을 때처럼 그냥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선배님 대본 보듯 읽었지요. 

글 한 편의 구성과 흐름, 담은 의미와 마무리 등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아직 읽지 못한 작가님의 책이 남아있어 기쁩니다.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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