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크립씨 Nov 07. 2023

졸았다, 수능을 치면서

2009년 겨울

“인생의 좌절(?)”


토론토의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아주 추운 겨울 날, 거리를 걸으며 숨을 들이쉬면 코털들이 ‘바지직’하고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국의 남부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캐나다의 추위가 더 혹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캐나다가 춥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도 추울 줄은 몰랐다. 역시 경험을 통해 얻는 앎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만 해도 “계시를 받은” 중학생이었는데, 왜 갑자기 난데 없이 토론토 이야기가 나왔냐고? 바로 그 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학과 전공으로 졸업했다! 다만 토론토에서 보냈던 꽤 길었던 시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쩌다가 나는 ‘미국 위에 위치한 미지의 나라’로 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해야만 하겠다.



눈 내리는 토론토. 눈사람을 만들기는 커녕, 내가 눈사람이 되곤 했다




중학교를 마친 후의 삶은 어떠했냐고? 여전히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중학교 시절과 비슷하게 폭넓은 교우관계를 꾸려 나가지는 않았던 (혹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 이후 서양사를 다시 마주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이었다. 사회탐구 과목 중에 ‘세계사’라는 것이 있기는 했으나 (2023년의 고교교과과정에는 이 과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수능을 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세계사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는 스스로 학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가야하는 중압감을 이기고, 용기를 내서 ‘세계사’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고등학교를 들어가니 전반적으로 모든 과목의 난이도가 더욱 높아졌고, 그 결과 나는 서양사에 큰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아쉬운대로 서양사에 관련한 영화들 정도를 챙겨보면서 사학과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갔다.


사학과에 반드시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고등학교의 생활은 참으로 재미가 없었다. 2-3시간씩 이어졌던 야간 자율 학습 (요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하기 싫은 과목들을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의무, 두발 및 복장 단속 등은 하루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가고 싶게끔 했다 – 그야말로, ‘학교라는 감옥에서,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였다. 고3 인생이라는 화살이 날아갈 곳은 “당연하게도” 수능이라는 과녁판이었던지라, 이따금 치러야했던 모의고사에 일희일비하면서 시간들을 흘려 보냈다. 그러다 보니 수능 시즌이 불쑥 다가왔다. 사학과에 진학했다가는 다른 전공에 비해 취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도 묵묵히 사학과를 가겠노라는 대답으로 수차례의 진학상담을 마무리했다. 수시지원 철이 끝났다. 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수시지원을 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났을까? 아침에 눈을 뜨니, 수능 당일이었다.


수능이 망했다! 눈을 번쩍 뜨니까 시험 종료 10분이 남았었다. 외국어 영역 (지금은 아마 ‘영어영역’일 것이다)을 치르는 오후, 교실의 창으로 들어온 따뜻한 햇살에 식곤증이 도졌던 것이다. 이 사건은 아직도 내가 수능을 망친 것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열심히 게으름을 피웠던 나로서는 이 사건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쨌든 수능이 망했다. 대학에 “잘” 진학하면 취직 및 연애를 위시한 인생의 성공이 주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로서는, 인생이 끝난 것이다. 나의 수능성적으로는 도무지 갈 수가 없었던 몇몇 대학교의 사학과에 지원서를 내고, 싹 다 떨어졌다. 내 관짝에 못이 박히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재수 생활을 시작하고 몇 주, 어쩌면 몇 달을 보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기약 없이 늦춰진 사학과와의 만남은 꽤 빨리 찾아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생의 계획에 존재하지 않았던 캐나다라는 나라가 내 삶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캐나다로 갈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다행히 수능 결과는 내 인생을 끝내지 못했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수능을 앞두고 있다면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능은 당신의 인생을 망하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세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수능을 잘 본다고 해서 인생을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30살이 훌쩍 넘은 지금은 망쳐버렸던 수능 정도는 웃고 넘길 정도의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 세월이 흐른 뒤에는 사무실 키를 반납하고, 박사과정을 중단한 올해의 사건도 작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캐나다로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는 행운을 그 때 당시에는 그다지 감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다.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던 좋은 시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속상함만 가득 찼던 미성숙했던 나 스스로에게 후회를 느낀다. 이러한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 그래서 올해는 삐걱거리던 대학원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 감사해보려 한다.




별 소리를 다했다. 기억을 더듬다보면 감상적일 때가 있는데, 지금이 꼭 그런 것 같다. 얼른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 해야겠다.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도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사학과랑 만나는 것조차 이렇게 오래걸리는데, 석사학위가 무려 3개라니. 글을 쓰는 나로서도 기가 찰 노릇이다. 아쉽게도 (?) 아직 석사학위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 전에 대학교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학과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나의 연구 주제도 만났기 때문이다. 토론토에는 2010년에 도착했다. 그나저나 바로 사학과와 만났냐고? 영어로 인삿말 정도나 겨우하던 나였는데, 그럴리가 있나.

매거진의 이전글 계시를 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