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간호사가 만드는 공동의 지적 자산과 인계의 세계
수술 인계 공유법
지금도 그렇지만 나이트 근무나 주말 근무는 늘 응급 수술 때문에 부담스럽다. 응급 수술이 자주 뜨는 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심장혈관외과 등의 메이저 과를 돌지 않은 나는 특히 그 부담이 있다. 낯선 수술에 대한 긴장감도 그렇지만 무능해서 제때 수술 지원을 못하고, 같은 수술 팀원 및 환자에게 폐를 끼치는 게 싫은 것이다. 그래서 임상 단계 승급을 위한 응급 수술 시험도 시기마다 응시해서 일찍 수료하고, 이브닝 근무 때 인력 여유가 되면 차지 선생님께 부탁해 접해보지 못한 수술에 들어가 더블 스크럽을 하며 배우기도 했다.
주말 근무의 막내는 다음 달 근무가 확정되면 같이 근무가 나온 선생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 “저는 어느 과에 있는 어떤 간호사인데 이번에 근무가 같이 나왔습니다, 어떤 과의 수술을 집중적으로 공부해갈까요?” 3인 근무 체제(연차별로 시니어, 주니어, 액팅을 나누어 한 듀티의 근무를 짠다) 근무에서 관리감독 역할인 시니어 간호사는 전체 상황을 총괄하고 듀티 차지 차팅, 진료과 및 온콜 간호사 연락 외에도 라운딩 등의 업무가 있기 때문에 저연차인 주니어, 액팅이 대부분 수술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보통 파트별로 상호보완이 가능하도록 근무표가 나온다. 주니어는 액팅에게 서로가 할 수 있는 수술 외의 여집합을 함께 공부해가자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걸 중점적으로 해갈 테니까, 너는 이런 걸 조금 더 신경써서 해오렴. 그래도 순회간호사 업무를 봐야 하니까 소모품, 부속 챙기는 것 기구 장비 셋팅은 같이 공부를 해야 돼.” 책임은 함께 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긴장감과 부담감도 함께 나눈다. 응급 수술은 정말 복불복이라서 언제 어떤 과의 수술이 연달아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 때 각 과에 포진해있는 동기들에게 ‘응급 수술용 클라우드 폴더’를 제안한 적도 있었다. 공개 폴더로 승인되면 언제든 접근이 가능한 클라우드에 각 과의 수술 프로시져를 올려두고 우리 입장에서 잘 모를 수술 간호 팁이나 인계 사항 등 참고자료를 업로드하는 것이다. 각자 알고 있는 게 다르기에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필요할 때 그 자료를 신속하고 정확히 찾아서 쓸 수 있으니까 유용하리라 생각해 동기들을 설득하려 나섰다. 하지만 각자도생이 바쁘다보니 흐지부지 되어서 몇몇 친구들만 올리고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다.
결국에는 필요할 때마다 해당 과의 메인 수술방 컴퓨터를 켜서 파일을 찾아보거나, 급할 때에는 그 과의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구두로 인계를 받는다. 지금은 시스템이 보완되어 전체 수술방 컴퓨터에서 수술실 공유 폴더에 들어가 각 과에서 업로드한 수술 프로시져를 참고할 수 있다. 물론 최신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엣날 자료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아래 연차는 한때 조금 더 독특한 방식을 썼다. 한 선생님이 구체적이지만 직접적인 방식으로 ‘주말근무용 응급 수술 노트’를 만들었다. 수술복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노트다. 이걸 자기 연차 동기들끼리 돌려가며 활용한다. 빌려간 친구는 주말 근무 때 그 노트에서 도움을 얻고, 자기 과의 내용을 노트에 기록해주고 원주인에게 돌려준다. 이런 식의 품앗이를 통해 도움을 주고 받음이 직접적으로 확인되어 그 연차의 많은 선생님들이 찾은 모양이다. 실제로 수술을 준비하고 챙기며 최신 사항을 잘 아는 선생님들이 만든 최고급 인계 자료라고 나름의 입소문이 났었다.
수술실은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몇 달만 이브닝을 하고 오면 데이 때 정규 수술조차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교수님들이 새로운 장비, 기구를 가져오거나 재료 및 약물 샘플을 들여오면서 인계받고 배워야하는 내용이 끝이 없다. 기존에 쓰던 수술재료도 어떤 내부 사건이 터지면 보완하거나 대체재를 쓰고, 생산 및 입고 지연이나 단종 등의 외부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도 발생한다. 그래서 한 수술의 흐름을 안다고 하더라도, 수술에 필요한 재료의 세부 사항을 모르게 되면 수술 간호에 애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실 간호사에게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인계를 주고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직장 생활에 있어서 지식과 경험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활발한 의사소통과 서로에게 배우는 자세를 통해 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 나 혼자 잘 한다고 일이 잘 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각자의 능력과 책임감을 믿고 꾸준히 배워 함께 하루 하루 무사히 보내는 나날이 되기를 오늘도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