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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라는 지난한 길

 동료 평가와 프리셉터 선생님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고통도 고뇌도 없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무언가 기대를 가지고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행동한 사람만이 상처받을 수 있다.



일 년에 한 번, 같은 파트 내 동료들을 대상으로 한 직원 간 업무 평가 결과가 공개되었다. 이브닝 출근했는데 데이번 근무를 한 동기가 알려줬다. "나 다면평가 보고 상처입었다. 속으로만 하던 생각을 이렇게 익명으로 내뱉을 수 있으니 살벌하고 무섭네." 그랬다. 그래서 나도 걱정되어서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조용히 확인해봐야지 싶었다. 병원에서 선정한 핵심 역량 별로 항목에 점수를 매겨 객관화된 평가를 하고, 추가로 개인별 코멘트를 달 수 있었는데 이 개인별 코멘트가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함께 일 한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있었을까.



후배, 동기, 선임 선생님 누구든 같은 파트 동료 사람이 랜덤으로 배정되어 일정 수의 상대를 평가하였다. 그래서 같이 일 한 사람도 있지만 종종 일하다 마주친 사이, 얼굴과 이름만 아는 사이도 상호 평가 대상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코멘트를 적고 싶었던 대상이 몇 명 있었다. 말해주지 않으면 이런 인상을 동료가 받는다는 것을 모를 것 같아 피드백이 필요한 경우와 본인의 관심과 능력을 다해 성의껏 일하며 모범이 되는 사람에 대한 감탄과 존경을 표하기 위한 경우가 그랬다.



누군가를 온전히 미워하지도 않고 사실 다 아등바등 열심히 일하는데(물론 각자의 기준에 따라 개인차는 있지만) 굳이 날을 세울 필요가 있나. 그래서 나는 상대에 대해 점수도 거의 만점에 가깝게 주었다. 이게 상대평가가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 자신이 낮은 평균점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된다고 해도 뭐 어쩌겠는가. 기분은 아쉽고 씁슬하겠지만 사실 인사 평가는 개인별 비밀에 부치는 항목이고, 나의 평판 위치가 어디든 알게된다고 해도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평가 점수야 뭐 일하는 내내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듯하다. 매년 익숙한 평균 점수. 그런데 개인 별 코멘트는 매 년 아주 버라이어티하게 사람을 흔든다. 상대적으로 칭찬과 격려가 많았지만, 비판과 비난의 반응이 더 크게 다가왔다. '업무처리를 꼼꼼하게 잘 한다, 차분하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한다, 아직 연차가 어린데도 방장 업무에 잘 적응해주어 고맙다, 자기 계발에도 적극적이며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반면에, '본인의 실수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실수에 지적하는 모습이 보기 불편하다, 다른 선임에게 인사를 안 하고 윗사람과 잘 못 지내는 것 같다, 선배에게 겸손을 보이면 좋겠다'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이틀 정도는 무엇을 해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동기들한테 말하니 "네가 그렇다고? 너한테?"라는 반응이지만, "그렇대. 내가 그렇게 보이나봐."하며 웃어넘기는 수밖에 없다. 올해 방장 업무를 처음 시작했었고, 로테이션 한 선임선생님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그 경계에서 저연차 방장과 고연차 액팅 사이에 트러블이 생각났다. 아마 그 시간들 외에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런 인상을 주었을까. 숙고하는 일이 잦고,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나서지 않으며, 누군가의 마음 불편하게 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는데 타인의 반응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신규 시절에 프리셉터 선생님이 "우리처럼 감정 표현이 적은 사람들은 곧잘 오해받는다. 나도 그런 일이 잦았는데, 선생님들의 반응에 너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주셨었다. 사람을 싫어하고 무관심해서가 아니고, 기본적인 성향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라 반응이 적어 보이는데 그게 자신에 대한 호불호로 느껴지는 걸까. 거기에 프레임을 씌워 당연히 내게 기대되는 일을 내가 했을 뿐인데 부정적인 판단을 내린 걸까.



이 기억과 감정을 끌고 갈 생각은 없다. 다만 아주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남겨줄 만큼 내게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기대 이상으로 많으며(같은 팀 동기에 비해 피드백이 곱절로 많았다), 나는 이제 많은 관계의 거미줄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구나 싶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람이 변하는 것은 쉽지 않고, 나는 그저 나의 일을 해갈 수 있을 뿐이다. 같은 성향에 대해 누군가는 칭찬하고 누군가는 비판한다. 처한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쉽게 곡절을 겪던가. 내가 나의 세계로 상대를 바라보듯, 상대도 상대의 세계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기에, 열심히 부딪치고 무언가 했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구나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우리 선임 선생님처럼 나와 내 주변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따뜻한 말을 건네줄 수 있었으면 한다. 우수 프리셉티로 선정된 선배님들을 롤모델 삼아 말이다. ‘후임 간호사를 믿고 잘 적응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배움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자신의 시행착오를 잊지 않고 성장하는 과정을 따스히 포용해줄 수 있는 자세를 가진 선임이 되고 싶다. 또 내향적 성격이라 대인 관계에 소극적이라는 핑계는 그만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선배에게 다가가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관심과 호감을 표현하고, 선배의 업무 스타일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우며 함께 일하는 후임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우리가 직장 동료로서 만났기 때문에 내 일 자체를 잘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운 좋게도 신규 시절부터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선생님이 늘 곁에 계셨다. 각자의 성격과 개성으로 수술실을 리더십있게 이끌어가고 원활한 의사소통과 배려가 돋보인 분들이었다."네가 들어와! 소독 간호사 바꿔."라며 예민하게 수술실 간호사를 가려가며 수술을 진행하던 교수님 앞에서, 내가 그래도 수술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지원해주며 가르쳐주시던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 스스로 깨닫지 못하던 스트레스를 눈치채고 먼저 괜찮냐고 여쭤봐주시던 선생님. 직장 생활에서 눈치보며 욕을 먹거나 인상으로 오해를 사는 일이 있었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며 마음의 힘을 길러주신 선생님. 내가 기억하는 프리셉터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 '우리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 병원이라면, 얼른 적응해서 같이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신 분이셨다.


간호학과-간호사의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 치고 사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다. 각자가 잘하는 일과 배우는 속도는 다르더라도 작은 일이라도 시키면 열심히하고, 기본적으로 배우고 익히려는 자세가 있고 부지런했다. 신규 선생님도 그러하리라. 많이 배우고 싶고, 잘 익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리라. 내가 수 번을 이야기해도 한 순간의 이해와 통찰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기억도 못하고 수행도 못 한다고 해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육 기간이 지나 독립을 앞두고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는, 사실 누구보다 신규 선생님이 아닌가. 응원하는 마음만은 끝끝내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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