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유복 May 27. 2024

이거 그 어르신 때문 아니야!?

갑자기 육아휴직을 쓰게 되었습니다.-20

24.05.05 일요일


어린이날을 맞아, 외출 겸 아내가 다니는 한의원에 따복이를 데리고 따라갔다.


한의원 문을 열자, 직원들이 어린이날 이벤트로 코스튬 복장(백설공주, 초록색 요정 등)을 하고 있었다.


입 가에 번지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헐레벌떡 자리로 가서 앉았다.


따복이를 앉고 있으니, 주변에서 어르신들이 예쁘다, 귀엽다 하시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바로 옆에 앉으신 할머님은 따복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따복이가 얼마나 이뻤는, "애기는 멀리 봐야 한다." "그렇게 안으면 안 된다." 등 할머님은 여러 가지 훈수를 두셨다.


따복이를 예뻐해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약 5분째 이어지는 할머님의 훈수로 인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괜찮습니다."라고 말씀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훈수는 계속되었다.


심지어 아기띠를 착용하기 위해 따복이를 잠깐 소파에 뉘어 놓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할머님은 따복이의 어깨를 두 손으로 꾹꾹 누르셨다.


그걸 보고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정말 0.3초 만에 할머님의 손을 강제로 떼어놓게 되었다.


결국 따복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님은 자리로 돌아가시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효(孝)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크게 틀고 시청하셨다.


그러면서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애기 엄마는 어디 가고 혼자 왔누 쯧쯧"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서둘러 따복이를 아기띠에 태우고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간 행복이는 대기실에서 따복이 우는 소리가 나자마자 물기 젖은 손 그대로 뛰쳐나왔다.


그제야 할머님은 유튜브 소리를 줄이시고, 우리 쪽을 힐끔힐끔 보시면서 진료 차례를 조용히 기다리셨다.


행복이가 진료 차례가 되어 원장실로 들어가자, 불편한 자리를 피할 겸 놀이방에 들어가 보았다.


놀이방에도 코스튬 복장이 여러 벌 있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을 위해 구비해 놓은 듯했다.

한의원 놀이방에 있는 코스튬 복장


집에 가기 위해 한의원을 나서려는 순간, 따복이의 퉁퉁 부은 발톱이 보였다. "어? 애 발톱이 왜 부어있지?"


그 어르신 때문인 것 같았다. "이거 그 어르신이 어깨 눌러서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나는 집에 가서도 한동안 어르신 핑계를 댔다.


아기가 보채도 "이거 분명 그 어르신이 애 어깨 눌러서 보채는 거 같은데?!"


따복이가 기침을 해도 "그 어르신이 애 어깨 누를 때, 침이 튀어서 기침하는 거 같은데?!"


하도 그러니 아내는 듣기 싫다며 짜증까지 냈다. "아! 그게 왜 그 어르신 때문이야!" "그만 좀 해 진짜!"


아직도 그 어르신 핑계는 현재진행형이다.


딱 오늘까지만 핑계 대려고 한다.

이전 09화 백일(百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