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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Nov 12. 2020

한 달간의 이별 #2

첫 번째 비행기 표 취소

잔뜩 긴장이 되고 무서웠지만 내심 별 일 아닐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
내 이름이 불리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 가, 의사 선생님을 마주 하고 앉아 내 증상을 설명하고 진찰을 받으면 주사 한 대 맞고 약 한 3일 치 정도 받아 집으로 오면 될 것이며, 아마 그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으니 떠나기 전까지 좀 쉬고 나는 계획대로 정해진 날짜에 비행기를 타면 이야기 끝!!!

그렇지만 나의 완벽한 시나리오는 첫 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진찰 결과 겨드랑에 멍울이 잡혔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해야 했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결과는 1주일 후 정도에 알 수 있고 그때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조직도 다 떼어내고 의사 선생님과의 이야기도 끝났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괜찮다는 확답을 듣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계속해서 열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밤에는 열이 더 심해졌다. 열 때문인지 온 몸의 통증이 심해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해열제를 먹고 버티다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주사를 맞고 오는 날도 있었고 하루 종일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도 늘어났다. 안 그래도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불안한데 몸은 자꾸 아프고 왜 그런지도 이유도 모르겠는데 떠날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겨우 부여잡고 있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아침 시어머님 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꽃게 탕을 한 솥 끓여 손수 게 살을 발라 내 밥 위에 올려주셨다.

[ 몸이 안 좋을수록 밥을 든든히 먹어야 된다.]

온몸에 힘이 없어 숟가락을 간신히 들고 올려주신 꽃게를 밥 위에 놓고 꾸역꾸역 억지로 삼켰다.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서 먹던 꽃게탕인데 아무 맛도 느껴지질 않았다.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마 비행기를 못 탈 것 같아…… 몸이 이렇게 안 좋은 걸 보면 뭔가 큰 병이 틀림없어……. 어떡하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꾹꾹 참고 있던 눈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시댁 식구들이 다 있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질질 짜다니!!! 그 와중에 창피해서 소리는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한 번 감정이 터져버려 그 후엔 단 1초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심으로 후회가 된다.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감정 추스르고 눈물 콧물 닦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 올 수도 있었는데, 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게 내 덕에 가족들은 아침을 다 먹지도 못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 좀 어떠셨어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그간 몸이 아팠다고 자세히 설명을 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기쿠치 병이라고 20~30 대 아시아 여자분들이 잘 걸리는 병이에요. 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처음 듣는데요.]
[지금 열이 나고 자꾸 통증이 있는 것도 이 병 때문이에요.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겨 겨드랑이 부분에 림프절이 과도하게 부풀어 오르고 괴사하고 있는 상태예요. 스테로이드 성 염증 치료제를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죠. 걱정 많이 하셨지요? 치료하면 되는 병이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약을 처 방해드릴 테니 약 다 드시면 다시 내원하세요.]
 큰 병이 아니라니 너무 다행이었지만, 이제 2주 정도의 시간만 남아 있던 터라 계속 치료하며 경과를 봐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 선생님, 제가 2주 후에 캐나다로 떠나는데 그때까지 다 나을 수 있을까요?]
[ 글쎄요...... 딱 언제 다 낫는다는 보장이 없는 병이라..... 환자의 상태 따라 빨리 호전되는 분들도 있지만 몇 달씩 가는 분들도 있으셔서….]
난감했다. 선뜻 어떤 말도 떠오르질 않았다.
[자연 치유가 되기도 하지만 병원 오시기 전까지 계속 아프셨잖아요. 그런 상태가 지속이 될 텐데….. 캐나다에서 병원 다니시면서 치료받을 수 있겠어요? 비행기도 오래 타셔야 할 텐데 저는 그것도 걱정인데요. 푹 쉬면서 치료를 받아야 빨리 나을 수 있거든요.]
나는 계속 머뭇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설득시키려 계속 말을 이어가셨다.
[비행기 표를 조금 미루고 치료를 다 마치고 가시면 좋겠어요. 당장 가야 하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건강이 더 우선이잖아요. 계속 아프실 거예요. 큰 병은 아니지만 환자를 굉장히 힘들게 하는 병이에요.]
[그렇지만 비행기를 미룬 후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어쩌죠? 말씀하신 대로 몇 달씩 가는 사람들도 있다면 저도 그럴 수 있잖아요.]
[그렇죠.]

좀 더 일찍 아팠다면 이런 골치 아픈 일도 없었을 텐데, 이미 일어난 일 원망해 봤자 소용없지만  이런 상황이 내 잘못 같아서 속이 상했다.

[수술로 환부를 떼어내는 방법도 있어요. 아무래도 확실하지요.]

말만 들어도 무서웠지만 딱히 다른 수 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떠나는 날짜를 늦출 수는 있어도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나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절망감은 나를 여기까지 밀어냈는데 이제는 아파서 가지도 못하게 된다고? 이 상황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컸다. 툭하면 화를 내고 , 자주 울었고,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그 순간순간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라고 느낄 정도로 제어가 안되던 시기였다. 나중에야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여러모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수술 날짜를 잡고 진료실을 나왔다. 도저히 비행 날짜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 표는 취소해야 했다. 남편에게 미안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건강 회복하고 가면 되지, 돈이 아깝긴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여유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급했고, 참을성이 없었고,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 스스로가 그때처럼 밉고 쓸모없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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