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멀더와 스컬리 Aug 22. 2021

어떤, 비행 / 결혼 / 월간에세이 7월호 게재

흔한 부부의 고유한 이야기 1/ 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 에세이

월간에세이 7월호 / 에세이 글마당에 게재된 글입니다.


어떤, 비행


천구백구십일 년, 오 학년과 일 학년, 자매는 둘이서 돈가스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두 번째 돈가스였다. 시골이라 그랬을까, 지금은 흔히 먹는 돈가스지만 그 시절엔 흔치 않은 돈가스였다.


온 가족이 함께 먹었던 첫 번째 돈가스집 또한 나는 기억한다. 수복식당. 원래는 밥과 반찬이 나오는 한식당이었는데 어느 날 돈가스 메뉴가 등장했다. 갓 튀겨진 바삭한 껍질 속에 쫀득한 고기. 달콤하고도 상큼한 소스. 무엇보다 칼질해서 먹는 우아함이라니!


지금껏 수저와 포크만 사용하다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포크를 들고 먹는다는 것이 좋았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아이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비디오를 샀을 때 선물로 받았던 비디오테이프 '테이블 매너'가 생각났다. 눈으로 배웠던 매너를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는데, 돈가스를 먹으며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우아하게 돈가스를 먹었다. 두근거렸고, 달콤했고, 그저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돈가스집. 시골에 처음으로 생긴 돈가스 전문점이었다. 세련된 주황색 인테리어에 이름은 '달라스'. 자매는 달라스로 향했다. 이인용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인분의 돈가스를 주문했다. 식당에서 봤던 돈가스보다 더 예뻤다.


동그란 접시 위에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뜬 것 같은 동그란 밥, 양배추 샐러드와 옥수수 알갱이들, 그리고 어여쁜 돈가스. 먹기 좋게 좋게 썰어주려고 동생의 접시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칼질을 하는 순간, 돈가스는 날았다. 동생 앞에 툭! 떨어진 것은 돈가스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네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돈가스를 멋지게 썰어주고 싶었는데, 창피함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칼질을 누군가에게 들켰을까 살필 겨를도 없이, 얼른 접시에 주워 담았다. 흔히 먹는 돈가스가 아니라 마음먹고 나선 외식이라는 것을 들켰을까, 더 부끄러웠다.


돈가스의 비행. 당황했던 기억만 강하게 남고 사실 그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 이상 돈가스가 날아가지 않도록 꾹꾹 눌러가며, 고기를 써는 건지 무딘 칼로 찍어서 끊은 건지 모르게, 아무튼 잘 썰어서 동생과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그 후로 한동안 그곳에 가지 않았다. 지금은 하나의 귀여운 에피소드지만, 그때는 자존심 강하고 부끄럼 많던 소녀라서 그랬다. 당황했던 순간은 기록되지 않았고,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억들과 함께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이천팔 년, 그날의 기억을 불러온 또 다른 그날이 있었다. 공휴일을 맞아 남자 친구와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남자친구의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가족들이 나를 보고 싶어 하니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셨다. 남자 친구가 아플 때 첫 방문, 이후로도 한두 번 들른 적은 있었지만, 그날은 신정이라 어쩐지 피하고 싶었다.


그땐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겠다.' 그 정도의 생각이 있었고, 우린 사귄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기에, 새해 첫날이라는 특별한 날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마땅히 갈 데가 없었고, 이미 인사드린 적이 있는 어머니께서 초대하셨는데,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남자 친구가 가고 싶어 했다.


일하시느라 인사만 잠깐 나눴던 아버님과 여동생이 나를 너무 궁금해한다고, 새해 초라 올 사람이 아무도 없고 썰렁할 테니 가서 밥만 먹고 오자고 했다. 어머니께서 가족들에게 내 칭찬을 워낙 많이 하셔서, 다들 궁금해한다고 했다. 칭찬에 약한 나였기에, 그 말에 더 혹했던 것 같다.


거절은 몰랐던 그때의 나는, 그렇게 남자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집엔 예상과 달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남편의 이모와 숙모, 삼촌과 사촌, 사촌의 아내, 그리고 육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안에 행사가 있어 근처에 오셨다가 잠깐 들르셨단다. 속았다. 어쨌든 남편의 열몇분의 친척분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자리에, 정말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되었다.


스무 개가 넘는 눈동자는 모두 나를 향해 반짝였고,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과일을 깎게 되었다. 유난히 크고 단단했던 단감, 떨리는 손을 타고, 단감은 날았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를 데굴데굴 굴러 삼촌 앞으로 갔다. 날지 말아야 할 것의 두 번째 비행이었다.


얼어있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당황한 나를 보며 누구도 웃지 않았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말을 이런 상황에 쓰는 거구나 깨달았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자리는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게 끝이 났다.


준비되지 않은 나를 그 자리에 몰아넣은 어머니를 대신해, 남자 친구는 한동안 나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남자 친구가 아닌 어머니의 프러포즈를 받고, 다음 해 오월 우리는 결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단감의 비행을 목격했던 분들은 나의 시어른들이 되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날 그 자리는 '며느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한 자리였다. 추진력 강한 어머님께서 만드신 다분히 의도적인 자리였으리라. 그날이 있은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남자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그동안 모아두셨던 쌈짓돈으로 강북구에 작은 집을 사셨고,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집이 어때 보이냐고,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이 집에서 둘이 살면 좋겠다고 하셨다. 참으로 앞선 행보였다. 우린 만난 지 겨우 몇 달 된 연인이었고, 한 번도 결혼에 대해 얘기 나눈 적 없던 커플이었다.


 다행히 우린 제법 잘 맞는 부부로 십 년을 지나왔고, 가끔 돈가스를 함께 먹으며 두 번의 비행을 추억한다. 남편과 시골에 갈 때면 지금은 사라진 '수복식당'과 '달라스'의 위치를 가리키기도 한다. 추억은 글감이 되었고, 가끔 누군가로부터 날아오는 과일을 맞을 때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노라 말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나니. 그날의 남자 친구, 내 너를 용서하노라!



월간에세이 7월호 에세이 독자 글마당
월간에세이 7월호 에세이 독자 글마당


< 작가의 말 : 이 글은 2021년 월간에세이 7월호 에세이 독자 글마당에 게재된 글입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편집자님께서 원문을 많이 살려주셨죠. 어떤 부분이 윤문 되었는지 초고와 비교해 보세요.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께 도움 되실 것 같아 함께 올려봅니다. 그리고 월간에세이는 다양한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 정말 좋은 잡지입니다. 추천드려요. >




이전 16화 착한 딸, 나쁜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