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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Aug 25. 2021

짜장면 한 그릇이 건네는 위로

팬데믹의 마라톤/ 에세이


팬데믹의 여름, 옆 나라 일본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이 열리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는 올림픽을 보며 작은 위로를 받는다.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경기를 치르기를 응원하고, 그들을 보며 함께 울고 웃는다. 


여느 때처럼 늦은 아침을 먹으며 여자 마라톤을 시청했다. 온도는 25도, 습도는 85%, 삿포로에서 경기는 시작되었다. 무더위에 내몰린 선수들을 보니 시작부터 걱정스러웠다. 길가에는 물과 얼음주머니가 준비되었지만 그 작은 것들이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선수들은 자기 자신과 싸우며 동시에 더위와도 싸워야 한다. 


누군가는 목에 물을 뿌렸고, 또 누군가는 아이스팩을 손에 쥐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올려가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옆 선수에게 얼음주머니를 건네기도 했다. 서로 경쟁하며 뛰고 있지만 더위를 이기는 것에는 모두 한마음 한 팀이었다. 그들은 순위를 다퉈 달리겠지만 서로의 완주를 응원할 것이다. 


우리도 지금 팬데믹이라는 긴 마라톤을 뛰고 있다. 달라지는 상황에 따라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백신만 나오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큰 희망을 가졌던 터라 최근의 재확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좌절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붙은 다리를 다시 부러뜨리는 느낌이었다. 바깥 생활을 조금씩 맛보다가 다시 주저앉은 일상은 전보다 더 갑갑했다. 


우리는 거리두기 4단계와 무더위를 함께 맞닥뜨렸다.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저녁이면 나섰던 산책도 한동안은 할 수 없었다. 장보기를 제외한 모든 외출을 삼가며 지낸 지 몇 주가 지났다. 나의 마음은 괜찮다가 괜찮지 않았고, 다시 괜찮았다가 유난히 괜찮지 않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조용한 식당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4단계를 맞이하고 처음 하는 외식이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텅 빈 중국집에 도착해서 주문을 하려는 데 4인 이상이라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 너무 오랫동안 집에서만 지내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잔뜩 기대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 우린 뚝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나눠 앉았다. 아빠와 아들, 딸과 나. 4인 가족이 2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은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었다.


자리에 앉아 남편과 나는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했다. 동거가족의 경우 6시 이후에도 3인 이상 모임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주머니께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다른 손님들이 보고 신고할까 봐 겁난다고 하셨다. 뒤늦게 한 테이블에 합치라는 말씀도 있으셨지만, 이미 상은 차려졌고 우리는 굳이 합치지 않았다. 덕분에 아들은 아빠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나는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갓 나온 뜨끈뜨끈한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이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짜장면 한 그릇에 숨통이 트였다. 


조용한 가게에 우리의 대화 소리가 울렸다. 건너 테이블에서 수저를 닦고 계셨던 아주머니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계셨다. 전에는 1개만 치워도 되었을 테이블을 2배로 치워야 할 텐데, 아주머니는 우리의 방문이 반가운 듯했다. 우리의 방문으로 텅 빈 가게를 지키던 아주머니도 조금 숨통이 트이셨을까. 우리는 그렇게 작은 위로를 주고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니 바람이 솔솔 불었다. 아침 뉴스에 입추라고 하더니 정말 가을이 오려나보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가을이 오면 이제 더위랑은 그만 싸워도 되겠구나. 


길게만 보이던 마라톤은 42.195km, 팬데믹은 대체 몇 km일까. 끝은 모르지만 오늘 하루 무사히 완주했다. 함께 뛰고 있는 모두가 무사히 완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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