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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Sep 04. 2021

엄마,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

몰랐던 마음 5/엄마의 노래/엄마의 마음/인생 노래/에세이

딸의 글이 한 꼭지 실린 월간지를 들고, 엄마는 미용실로 가셨다. 겨우 한 편의 글인데 자랑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런 엄마의 마음이 조금 귀여웠다.


딸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꽤나 기뻐하신다. 요즘 들어 들뜬 엄마 목소리가 낯설다. 엄마가 이렇게 설레는 목소리였던 적이 있었나? 우리의 통화는 늘 걱정이 주제였다.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걱정을 주고받으면 통화는 1분을 넘기지 못한다. 걱정이 많은 엄마와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딸이라서, 긴 대화가 힘들다. 밥을 안 먹고도 먹었다고 하고,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하고, 고민이 있어도 들킬까 얼른 전화를 끊는다. 퍽퍽한 엄마의 삶에 내 걱정까지 더하고 싶지 않아서 점점 할 말을 잃었다.  


K대와 Y대를 나온, 교수와 교사인 형제 사이에서 나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가난하지만 큰 욕심이 없어서 둥글둥글 잘 사는데, 엄마는 늘 걱정이시다. 가끔은 그 걱정이 싫다. 넌 뭘 해도 걱정이라는 말로 들려서, 그런 삐뚤어진 마음이 조금은 내 안에 있어서, 우리의 통화는 언제나 짧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걱정이 아닌 기대를 드렸다. 겨우 몇 편의 글을 썼을 뿐인데, 엄마는 셋째 딸도 뭔가 잘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좋으신가 보다. 엄마는 '글 쓰는 딸'을 지지해주신다. 글을 쓰다 막힐 때면,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내서 정성껏 대답해주신다. 이번에도 그런 엄마에게 기대 보기로 했다.


"엄마, 글 쓰는 데 필요해서 그러는데,
엄마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
"노래? 좋아하는 노래 없는데..."


뭐든 말해주고 싶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 듯했다. 초조해하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뭘 좋아하냐는 질문을 엄마는 늘 어려워하셨다.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사는 인생이라 그럴까.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받고 싶은 선물은 뭔지, 가고 싶은 곳은 어딘지, 그 쉬운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신다. 자식이 좋아하는 건 몇 개라도 척척 대답하시면서...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속상하고, 가끔 먹먹해진다.  

역시 이번에도 대답을 못 듣는구나 생각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들국화 여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들국화 여인이라고."
"아, 그 노래가 왜 좋아요?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어요?"

엄마는 또 말문이 막히셨다. 잘 모르겠다고, 그냥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좋아하는 걸 하나 찾으셨다니 그걸로 됐다. 엄마의 노래가 궁금해서 음악을 틀었다.  


'그것은 내 맘을 달래려고 하는 말. 아, 오늘 밤도 오늘 밤도 눈물짓는... 찬바람에 불어오는 외진 길가 모퉁이 오늘도 서럽게 떨고 있는 들국화. 아, 어느 누가 어느 누가 감싸주랴.'  

 엄마의 모진 인생이 떠올라서, 버티고 버텼을 삶이 생각나서, 가사가 마음을 찔렀다. 엄마도 저 여인처럼 밤마다 울었겠구나. 서러운 인생이었겠구나. 엄마의 이유를 찾아가며 노래를 들었다. 한참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 남자의 올곧은 순정이 좋아서.
그래서  노래가 좋다."

아, 이거 사랑노래였지. 첫 소절에 있는 '사랑'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상상도 못 했던 이유였다.

나한테 엄마는, 처음 본 순간부터 엄마여서, 한결같이 자식사랑만 보여주시던 분이라서 생각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엄마가 누군가의 딸이 되어 울던 순간에도, 울음을 뚝 그치고 우리의 끼니를 챙기시던 엄마라서. 엄마이기 전에, 엄마도 한 사람이라는 걸 잊고 지냈다. 그래 엄마도 여자였지. 자식을 둘이나 낳고 키우면서도 엄마를 몰랐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거 하나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가지 뭐.  


엄마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엄마, 내 인생 노래는 <강산에의 라구요>

나는 그 노래가 좋더라. 들으면 자꾸 엄마 아빠 생각이 나. 엄마 아빠를  옆에 두고도 그리워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노래방 가면 꼭 한 번씩 부르고 와요. 부르고 나면 효자 될 거 같고 막 그래. 노래만 부른다고 효자 되는 건 아닌데... 한바탕 부르고 나면 맘이 후련해요.'


엄마, 어제 새로 산 노래방 마이크랑 스피커 들고, 곧 내려갈게요.

오늘도 밥 잘 드시고, 아프지 마시고, 자식 걱정 그만 좀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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