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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Oct 13. 2021

갈 곳 잃은 비염 확진자, 의문의 1패

버스 안에서/일상/단상

일 년 내내 비염을 달고 살지만 요즘 같은 환절기엔 더욱 심하다. 온몸을 뒤흔드는 크나큰 재채기 때문에 난감한 순간이 많다. 심한 재채기로 허리를 비끗한 이후로 재채기가 날 때면 얼른 어딘가에 주저앉거나 한 손으로 허리를 잡고 진동을 줄이려 애쓴다.


그 후로, 나의 재채기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타인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말이 튀는 것은 곧 바이러스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팬데믹 이후에, 공공장소에서 재채기를 할 때면 더욱 눈치가 보인다. 비록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나로 인해 불편해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재채기가 날 때면, 얼른 자리를 피한다. 그곳이 조용한 곳이라면 더더욱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어제, 오랜만에 들른 도서관에서 십 분만 더 읽고 나오려 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그 모습은 흡사 책도둑 같았다. 그리고 오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또 재채기가 났다. 맨 뒷자리에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급하게 창쪽으로 몸을 돌렸고, 마스크를 낀 채로 오른쪽 팔에 코와 입을 박았다. 달리는 버스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나는, 재채기를 멈추려고, 소리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바로 앞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는, 나의 재채기가 너무 시끄러웠는지 두려웠는지, 나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쳤다. 맨 뒷자리에서 순식간에 운전석의 바로 뒷자리로 이동했다. 도망치듯 자리를 옮긴 그녀를 보며 이해하면서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란 사람 자체가 바이러스가 된 기분이 들었다.

치료도 어려운 비염, 뜻하지 않는 재채기, 약을 챙겨 먹어도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It's beyond my control!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사를 이곳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




어쩌면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을 160번 버스의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불편드려 죄송합니다만...


#저는 현재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임상증상이 없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현재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방역당국에 의해 현재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최근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했고, 내일이면 2주가 됩니다.

#저는 악성 비염이지만 KF94 마스크를 빈틈없이 꼈습니다.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저는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 것으로 예상됩니다. 편한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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