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아침,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러 갔던 남편이 한참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질문에 남편은 차사고가 났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사고처리를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사고를 직접 목격한 게 아니었기에 찰나의 순간 온갖 사고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늘 차분한 남편이라 남편의 태도를 보고 사고 규모를 짐작할 수 없었고, 궁금하다고 누구보다 혼란스러울 사고 당사자를 붙들고 당장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남편의 몸을 살폈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남편이 쓰고 온 우산을 조용히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주차된 차를 한 바퀴 뺑 돌았다. 앞범퍼에 조금 전 사고 흔적이 있었다. 검게 얼룩지고 페인트가 찌글찌글 갈라졌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제야 조금 차분해졌다. 사고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내 마음속은 꽤 호들갑스러웠다. 속으로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왜요? 어쩌다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이는요? 함께 타고 있었나요? 많이 놀랐나요?’
마음속 말들을 그 자리에서 마구 퍼부었다면 아마 남편은 더 속상했겠고 곁에 있던 딸아이도 더 놀랐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나를 꾹꾹 눌렀다. 어쩐지 요즘 감정이 조금씩 정제되고 다듬어지는 느낌이다.
혼자였을 땐 온갖 두려움이 많았다. 필요한 순간에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불필요한 순간에 지나치게 흥분하기도 하는 미완의 사람이었다. 혼자였으니까. 내 감정에 자유로웠다. 좋고 나쁨을 구분 지을 필요도 없는 그냥 그게 나란 사람이었다.
하지만 둘이 되고 셋이 되고 가족을 이루며 조금씩 달라졌다. 감정을 누르고 감추고 때론 더 용기를 냈다. 내 서투른 감정과 행동들로 인해 아이들이 영향받지 않기를 바랐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불필요한 편견을 갖고 괜한 두려움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수많은 두려움을 감췄다, 환공포증, 풍선공포증, 고양이, 강아지..., 내 아이들이 나 때문에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을 위해 괜찮은 척하며 억지로 풍선을 불었고, 고양이나 강아지를 길에서 마주칠 때면 몸으로 막아서서 아이들을 보호했다. 엄마라면 누구든 마땅히 그랬겠지만…
속으로 나는 엄청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괜찮다. 괜찮다. 두렵지 않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스스로 건 주문에 내가 속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생각하자 정말 괜찮아졌다. 아이들을 속이기 위해 시작한 마인드 컨트롤에 나도 속고 있었다. 그러면서 두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 갔다.
터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풍선 한 개를 불기가 어려웠지만, 방안 가득 풍선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고,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넓은 길을 내어주고 구석으로만 걷던 내가, 아이들과 고양이카페와 애견카페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 두려운 마음이 남았지만 그 마음을 숨길 수 있을 만큼 나는 분명 강해졌다. 무례한 사람에게 숨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호들갑 떨지 않을 만큼 차분해졌다.
그렇게 차분히 남편의 곁으로 돌아와 사고접수 통화를 엿들었다. 신호가 없는 집 근처 골목 사거리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차를 멈췄고, 오토바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대로 와서 차를 박았다고 한다. 내가 궁금했던 질문들을 상담원이 대신해 줬다. 차를 고치지 않을 거면 굳이 사고접수가 필요 없다고 해서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통화는 싱겁게 끝이 났다. 사고당시 아들이 함께였는지 남편에게 물었고 함께였지만 아들은 괜찮다고 남편이 답했다. 우리의 대화도 심플하게 끝이 났다.
남편은 차를 고칠지 고민이라고 한다. 부딪히고 깨지라고 있는 게 범퍼인데 그걸 굳이 고쳐야 할지 고쳐서 우리가 얻을 이익이 무엇일지 고민해 봐야겠단다. 나 역시 오토바이 운전자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매번 이렇게 작은 사고들로 우리 범퍼는 얼룩져간다. 아무래도 이번 사고도 그냥 넘어가게 될 것 같다. 차는 작은 상처를 얻고, 우리는 조금 성숙해진 마음을 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