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괜찮은 날들

운수 좋은 날

by 멀더와 스컬리

저녁을 먹으려고

아이들과 집을 나섰다.


언제 내렸는지

땅은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우리는 우산을 챙길까

잠시 고민하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식당에 갔더니

마침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있어서

여유 있게 식사를 마쳤고

식당 앞에는 열댓 명의 대기줄이 보인다.

조금만 늦었어도

저 줄에 우리가 있었겠지.


소화를 시킬 겸 들른 마트에는

사려던 내의와 잠옷이 세일 중이라

필요한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그사이 비가 또 내렸는지

아까보다 더 젖은 바닥을 보며

또다시 비가 내릴까

우리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가는 동안 한두 방울 빗방울이 보이더니

네 식구가 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늦저녁 소나기와 같은 굵은 비가

시커먼 하늘에서 후드득 떨어졌다.


그런 날이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서면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 초록불이 들어오고


출근길에 후다닥 달려가면

지하철이 딱 도착하고


우산을 못 챙겼는데

내가 이동하는 시간에만 비가 뚝 그쳐서

하루 종일 비를 피하는 날


몹시 운이 좋은 날


온 세상은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하늘의 응원을 받은듯한 느낌이 든다.


토요일인 줄 알았다가 일요일임을 깨닫고

실망했던 순간은 날려버리고


이 좋은 기운으로

다음 주도 힘차게 살아야겠다.


다시 별것 아닌 소소한 행운을

기어이 찾아내며

또다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하루를 채워가야겠다.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결국엔 끝에 지독히도 불운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행운이 있고

행운 다음에 따르는 불운은

그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행운만이 존재한다.


행운과 당연한 일, 있을 수 있는 일.

그런 날들을 보내다 보면

제법 괜찮은 날들로 채워진다.


제법 괜찮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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