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배우는 법 1, 시타르

인도 악기를 배우다

by 조작가

인도를 배우는 법, 시타르


성격 탓인지 체질 탓인지, 한 장소에서 몸이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틀 정도 지나 이곳의 공기가 익숙해질 무렵, 바라나시에서 해보고 싶던 일들 중 ‘악기 배우기’를 도전하기로 했다. 뱅갈리토라라는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골목에 악기상들이 있고, 여러 단기 클래스를 연다소 했다. 골목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둥그렇게 둘러앉아 젬베를 두드리는 교습 현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젬베가 아프리카 악기라는 점도 재밌지만 둘러앉은 대부분이 한국인인 것도 아이러니했다.

제3세계 음악에 호기심이 많던 난, 좀 더 '인도스러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고, 시타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여섯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꽤 오래 쳤고 서양의 음계에 익숙했음에도 대학생활 내내 풍물, 사물놀이, 재즈 등을 가까이 했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민속악의 묘한 마력을 알게 되었던 탓이기도 하다. 단지 정률적인 음계의 법칙에서 오는 조화로움에서 벗어난 오래 묵은 장맛 같은 음악의 매력은 그 끝이 없을 만큼 깊기도 하니. 서른 즈음 또 한 번 제대로 밴드 음악으로 빠지게 된 흑인들의 음악, 재즈에서도 그 유사한 마력을 느꼈다. 인도의 본색, '시타르'는, 내가 찾던 전통의 장맛에 더해 신비로운 자극의 맛살라의 맛을 동시에 표현해 줄 것만 같은 그야말로 '인도식 카레' 같은 악기였다.


인도 전통 현악기 시타르 (Sitar)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해서인지, 수강생이 드물었다. 바라나시 골목에서 1주일간 나 외의 다른 수강생을 본 적이 없다. 레슨비 역시 1시간에 5000원(!) 정도로 3000원짜리 젬베 레슨에 비해 비싼 편이긴 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드디어 강습소를 찾았다. 악기상 주인은 ‘시타르 레슨 생’이 왔다는 연락을 돌렸고, 동네에서 기타 좀 친다는 형님 포스의 아저씨 강사님이 급한 걸음으로 출동하셨다. 수강생의 시간에 맞추어서 오가는 일종의 초빙 강사였나 보다. (그는 레슨 마지막 날, 한국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라며 자신의 사이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 나에겐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3일 치 레슨을 등록했다. 솔직히 3번의 레슨으로 연주가 가능할 거라욕심낸 건 아니었고, 그저, 그 유명한 시타르가 얼마나 난해한 악기인가 몸소 도전해 보려는 체험 정도였을 거다.

무엇이든 새로 접하는 물건에 신비감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타르는 먼저, 자세 잡기부터 색달랐다. 시타르는 요가를 하듯 제대로 다리를 꼬고 앉은 가부좌 자세로 악기를 감싸 안아 연주한다. 줄의 개수는 악기마다 다른 것 같지만 내가 다룬 악기는 2단 구성의 대형 악기였다. 현을 튕기는 피크같은 역할의 도구도 필요한데, 철사로 된 플렉트럼(plectrum)이라는 도구를 손가락에 끼어 사용한다. 플라스틱의 피크나 손으로 부드럽게 현을 건드리는 일반적 기타와 달리 쇠와 쇠가 만나 울림을 만드는 낭창거림의 예민한 파장이 음색 차이를 만든다. 공명을 도와주는 줄이 2단으로 더 매어져 있어서 리듬 스트로크나 울림을 위한 신비로운 진동음이 겹친다. 여러 겹의 튕김과 소리가 서로 방해받지 않고 어울리려면 조작이 더욱 능숙해야만 한다. 금속과 금속, 그리고 손가락과 금속이 만나고, 플랫을 짚으며 음정을 옮겨 다니는 여러 조작이 필요하다. 이 한 덩이의 장치 안에서 오묘한 울림이 한 번에 '지앙쟈앙' 울려 귀와 몸까지 파장을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지우앙~ 쟈앙~ 주우앙~ 규아앙~

비틀스도 이 악기를 배워 음반에 넣었다더니, 그냥 아무 플랫에나 손을 얹고 스트로크만 하고 있어도 24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던, 그야말로 ‘우주의 음색’이었다. 악기라는 도구는, 가끔 생물체 같기도, 캐릭터가 살아있는 인물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리친 스트로크가 떠난 뒤, 스스로 파르르 진동하며 울림을 내뿜는 이 악기는 더 그랬다. 몹시 괴팍한 성질에 덩치가 크지만 예민하고 상처를 잘 입을 것 같은 캐릭터가 들어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강습 전, 시타르 현을 조율하기

여러 주법이 있었겠지만 3일 동안의 연습코스는, 2줄씩 한 번에 튕겨주며 멜로디 라인을 만들고, 뒷소리를 받쳐주는 스트로크 주법을 함께 구사하는 단순한 연주법이었다. 첫 번째 곡은 캐럴. 여기, 동양의 힌두와 불교의 성지 바라나시 골목에서 징글벨을 시타르로 연주하다니! 서로 다른 시공 時空이 만나게 된 연 然을 시연했다. 하루에 1곡씩. 첫날은 캐럴, 둘째 날은 동요를 배우다가 마지막 날 겨우 인도 노래 한 곡을 완주할 수 있었다. 인도곡에서 보이는 진행은, 나름 화성학을 배우고 음악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진 않던 나에게도 너무나 낯선 스케일의 진행이었다. 줄을 슬라이딩하고 벤딩하는 주법도 생소했다. 마치 우리나라 해금이나 가야금처럼 – 현에 힘을 주어 끌어당기며 음정을 이동하는 주법도 특이했다.


예약대로 3일 동안 성실히! 다닌 결과 3시간 레슨으로 6개월어치를 배운 셈이라는 허풍 같아 보이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바라나시가 마지막 도시였다면, 아마도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고, 장식마저 멋들어진 시타르를 배낭 위에 업어왔을지도 모른다! 3주 후쯤, 뉴델리의 악기상점에서도 20만 원 대의 (저렴한) 미니 시타르를 발견하고 잠시 고민을 했으니. 너무나 혹했지만, 참아야 했다. 예민해 보이는 악기를 서울까지 데려올 자신도 없었고, 예전 터키 여행에서 데려온 ‘사즈’ 혹은 ‘바흘라마’라고 불리는 작은 기타도 결국은 악기로서의 제 역할을 주지 못하고 방구석을 장식하는 기념품으로 전락한 전례가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바라나시의 어느 악기상 골방에서 만난 예민한 거인과의 만남과 우주적 선율은 추억으로만 남겨 두기로 했다.


연습용으로 내가 받아 사용하던 시타르, 줄이 정말 많다!
내가 배운 인도 동요 <Dhun>! 강사님이 친히 써주신 구음 악보!


이전 05화깨알같이 섬세하고 신처럼 대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