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기차를 타보았습니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로
바라나시에서 1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할 두 번째 도시는,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다. 드디어 인도의 야간 기차를 타야 하는 첫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기차여행에 대한 정보도 얻을 겸, 같은 경로의 여행자를 수소문했었다. 몇 번 여행자 카페의 쪽지를 주고받았지만, 접선에는 실패했다. 아쉬웠지만 홀로 출발할 수밖에.
바라나시 시내에서 역사까지는 릭샤를 이용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릭샤에도 모터를 이용하는 신식과 인력으로 감당하는 사이클 릭샤가 있다. 모터 릭샤는 눈에 띄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내 앞을 서성이던 사이클 릭샤를 선택하여 바라나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짐을 싣고 비용을 흥정하고 나니, 뼈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몸의 릭샤 왈라 아저씨의 모습이 그제사 눈에 들어온다. 30여 분 달려야 하는 거리. 그는 정말 온 힘으로 페달을 밟아 제법 무거운(!) 나와, 또 만만치 않은 내 배낭을 실어 날라야 했다. 기차역에 가까워지자 점점 더 그 밀도를 더해가는 엄청난 바라나시의 러시아워를 헤치고 달렸다. 인도의 인구는 세계 1위. 어마어마하다지만, 그들이 다 여기에 모이는 듯 어마어마한 인파다. 다들 대체 어디로 오고 가는 건지 길을 막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자동차도 많고, 각종 릭샤로 가득하며 그 사이로 사람과 동물도 같이 걷는다. 가장 힘든 것은 소음이었다. 인도 사람들의 청력은 우리와 좀 다른 편인 건지, 거리에서 누구나 되는 대로 클랙슨을 울린다. 멀쩡히 눈을 마주치면서도 마치 대화하듯 빵빵대는 소리를 내어 존재를 알리는 것 같다. 이 도시에 처음 도착할 때처럼 온통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아비규환인 도로를 정리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경찰이 저 멀리 보였고, 우리의 ‘왈라 아저씨’는 그 혼돈의 거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빈 곳을 요리조리 밟아나가며 역사로 향했다.
그러던 중 내가 눈치채지 못한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그 번잡한 도로에 나름대로 지켜야 할 만한 규칙이 있었던 모양이다. 도로 위에서 신호를 보내던 경찰이 우리 릭샤를 갑자기 세웠다. 그는 무척이나 화가 난 목소리로 왈라를 다그쳤다. 말로 다그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들고 있던 가는 막대기로 사정없이 우리 릭샤의 바퀴를 마구 내리치며 소리를 지른다. 마치 훈계를 위해 종아리를 치던 어른의 모습처럼. 몸을 굴려 바퀴를 돌려가는 일 하나에 정신없던 나이 든 릭샤 왈라는 분명히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힌디어는 1도 모르는 내게도 그가 하는 말의 뜻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멸시와 욕이라는 것쯤은 어린아이도 눈치챌 것들이다. 그의 릭샤에 올라탄 고객일 뿐인 나는, 게다가 번잡한 그 도로 위에서 긴장하는 것 외에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움츠려있을 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몇 차례의 회초리질이 끝나고 소리를 지르더니 우리를 보내주었다. 릭샤 왈라는 보란 듯이 다시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뒷좌석의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몹시 걱정되어 그를 향해 몇 번이나 소리쳤다.
“Are you OK?"
처음엔 못 듣는 것 같더니만 몇 번씩 큰소리로 목청을 높이니, 그제야 돌아보며 말 대신 손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아니, 어쩌면 까딱까딱하는 그 손짓의 의미는 어쩌면, ‘그는 괜찮을 거다’라는 내 짐작일 뿐이지만. 그렇게 바라보아야 편한 법이다. 방관자에게는.
도로에서의 긴장과 상상도 못 하였던 계급의 폭력을 목도한 후, 내 간덩이는 사실 좀 더 쪼그라들고, 불안의 게이지 역시 상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들에겐 일상인 일이며, 여행자들에게 불안할 일도, 위험할 것도 없는 그저 그들의 문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다다른 바라나시의 역사는 이제까지의 거리의 혼잡과는 또 다른, 말 그대로 ‘헬’ 게이트였다. 전쟁이 끝나고 난 폐허의 도시란 이런 모습일까. 바라나시는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자 성지라고는 하나, 이렇게 많은 인파가 가득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역사의 건물 이곳저곳, 아이부터 노인까지, 헐벗은 자들이 낡은 거적에 의지해 점령했다. 포탄이라도 터져 그곳에서 몇십 년째 살고 있는 듯한 행색들이다. ‘불가촉천민’이라 부르는 계급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름표를 붙이고 있지 않더라도 그들의 눈빛은 누가 뭐랄 것 없이 그들을 ‘약자’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갠지스강에서의 고요함, 평온, 명상, 해탈 등 – 종교에서 말하는 각종 염원의 장면들, 꿈같은 이상의 세계는 정말 강 너머에만 존재하는 게 확실하다. 속세의 처절한 삶이 바로 눈앞에 있었고, 어쩔 줄 모르는 여행자이자 방관자는 한시라도 빨리 내 눈앞의 장면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발걸음을 돌렸다.
찬 어둠, 소음, 거친 냄새로 맞은 인도 기차
인도처럼 땅덩이가 넓은 나라엔 역시 기차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여행 준비를 하며 가장 골몰했던 것이 수십 가지 노선의 기차와 다양한 등급의 좌석, 복잡한 노선과 시간표였다. 게다가 온라인으로 예매를 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미리 전 일정이 계획되지도, 일정이 짧지도 않았기에 이동경로를 그때그때 정하고, 숙소의 매니저들에게 티켓을 부탁하거나, 근처의 여행사에서 구매하는 방법들, 혹은 일부러 기차역을 오가며 직접 티켓을 사는 방법을 주로 택했다. 첫 예매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 묵었던 호텔의 매니저에게 부탁하여 구매해두었다. (예약된 바우처는 기차역에서 승차권으로 교환한다.)
아수라장이던 역사 앞의 혼돈에서 탈출한 기쁨에 이어, 무사히 표도 손에 쥐었고, 게이트도 찾아 기차에 올랐다. 안도의 한숨. 계급의 구별이 분명한 것처럼, 기차도 등급(class)이 구분이 매우 다양했는데, 칸칸이 다른 클래스를 지나 내가 예약한 객차를 발견하고 짐을 내렸다. 지정된 좌석을 찾아 짐을 정리하다 건너편의 한국 여행객과 반갑게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이없게도 바라나시에서 만나 동행하려고 했던, 바로 그분이다. 둘 다 인도의 야간 기차는 처음이었고, 홀로 여행하던 두 여행자는 (말이 통한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존재에 안도를 느끼며 폭풍 같은 한국어로 그간의 에피소드를 나눴다.
저녁 6시. 예정된 시간을 조금 지나서야, 기차는 바라나시를 뒤로하고 아그라로 향했다. 설국열차에서 보았던 것 같은 유물 같은 강철 덩어리들은 신기하게도 ‘척척 척척’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침대칸 ‘Sleeping class’이긴 하지만 가장 저렴한 등급의 이 열차는, 나름대로 여성 전용칸이 있었다. (나는 의식주와 교통수단과 같은 기본 생활비용을 아끼려 1등급 이상의 특별석을 예매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Ladies’ 전용 칸을 애용하곤 했다.)
들뜬 마음이 차츰 가라앉으니 이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보는 신기한 강철 덩어리의 실내 구조를 차분히, 관찰해보기 시작했다. 기차는 아주 단단하게 용접된 철판 구조물에, 벗겨진 페인트로 봐서, 마치 산업 혁명기에 제작되어 도장은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쯤이 마지막이지 아닐까 추측될 만큼 낡은 행색이다. 객차 창문을 열 수는 있지만, 쌓인 먼지를 만져야 하니 손을 대지 않는 편이 좀 더 나아 보였고, 냉방을 위한 기구로는 좌우 천정의 코너에 아주 단단히 박혀 있는 날개 달린 선풍기가 유일했다. 선풍기의 모든 표면에도 역시 어느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 먼지가 뽀얀 질감을 뽐내며 깔려 있다.
19세기의 유물을 느끼게 해주는 이 거대한 기차에 탑승하게 될 때마다 나는 3층 침대만을 이용하게 되었다. 좌우 열 각각에 3층 침대로 변신 가능한 고효율의 객차. 타자마자 자리에 눕지는 않기 때문에, 해가 지는 8~9시 이전까지는 3명의 승객이 대부분 1층의 좌석(겸 침대)에서 시간을 보낸다. 일행일 경우는 3명이 꼭 끼어 간식이라도 까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겠지만, 대개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색한 동승이 예상되는 구조다. 2층 침대의 승차권을 가진 승객이 가장 난감하다. 같은 칸의 승객이 앉아서 식사라도 하는 타이밍이라면 2층 침대를 펼 수가 없다. 모두가 동의하는 타이밍이 되어야, 함께 접혀있던 침대를 펴고 3명 모두 열을 지어 눕는다. 그에 반해 3층의 승객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을 점유할 수 있다. 특히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짐 보관 등에 좀 더 안전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나에겐 덜컹거리는 그 공간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잠을 자고, 간간이 화장실도 다녀오고, 짜이도 사 먹고. 책을 보는 것도, 여행기를 쓰는 일도 충분했다. 게다가 한참을 누워가는 여행이 어렵진 않았다. 뭐 워낙 평소에도 “휴식=몸을 누이는 일”과 동급이라 여기는 게으른 자에게 계속 누워있다는 행위가 거의 불편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장거리 기차의 객차에서 여행객들과 게임을 즐기며 밤새우던 유레일 기차의 낭만을 상상한다면, 잠시 접어두는 것도 좋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먼 타지로 이동하는 현지인을 위한 이동수단에서 만난 굳은 얼굴들은, 여행객들을 위한 낭만 이벤트 따위를 보여줄 이유가 없을 터였다.
야간 기차여행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새벽에 두 번이나 잠을 깨웠던 승차권 검사였다. 언제 어디서나 ‘신분을 증명하라’라는 신호는 큰 죄를 지은 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여권과 나를 드러내는 증명서를 내보이는 일이 왜 긴장되는 일인가, 그럴 만한 일인가 싶지만. 20여 년 전 막 자유화가 시작되던 동유럽을 이동하던 열차 구간에서도 그랬다. 여권을 확인하느라 만났던 음습한 밤기운 속의 차가운 눈빛을 한 군인들, 그리고 통행을 위해 돈을 요구했던 그들의 표정 없는 얼굴이 그랬다. 설들은 잠과 소음과 냄새,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과 밤의 적나라한 어둠을 버티니 곧 새벽이 되었다.
6시. 항상 정시에 맞출 리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장거리 여행이라는 '첫 경험'의 이벤트에 긴장을 더해 도착 예정시간이 다가오니 눈을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동틀 무렵부터 짐을 챙기고 지도를 보고, 시간을 보느라 부산을 떨었다. 좁은 3층 침대에서 뒹굴면서도 꾸준히 아래층의 현지인들에게 계속해서 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그들도 주섬주섬 침대칸을 정리하고 좌석에 앉아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보채 봤자 추월할 수 없는 길 위라는 것도 안다. 조바심을 부려봤자,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다그치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덤비곤 한다. 마음을 놓는 법을 배우고 싶지만, 마음을 놓고 살아보지 못한 성정이라 어렵다. 척척 척척. 지정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기차는 천재지변이 벌어지지 않는 한,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기다리고 버티면 새벽이 오는 것처럼, 기차 위에 올랐으면 그 리듬에 맡겨봄 직도 하다는 것을, 그 흐름을 믿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힘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항상 나중에서야 그 시간을 복기하며 깨닫는다.
기차는 약속 시각을 한참을 넘어 7시가 지나서야 아그라에 도착했다. 나의 조바심이 한계에 다다르기 직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백 년쯤 묵혔을 듯한 찌든 먼지와 냄새, 조여든 마음속에서 보낸 13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고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