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밝은 도시의 멋
예술의 도시 우다이푸르
. 휴양도시라는,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노닥거릴 수 있는 도시라는 이유로 여러 날을 머물게 된 곳이지만, 의외로 볼거리가 있어서 심심할 겨를은 없었다. 오히려 바라나시에서 보내던 날들보다 바빴다. 화려한 왕궁이나, 박물관, 전통 공연 등 낯선 문화의 색과 몸짓이 반짝거리며 여행자를 쉴 틈 없이 불러대고 있었다.
우다이푸르의 3일 차 이른 아침, 카메라와 간식, 물을 챙겨 들고 야심 차게 우다이푸르의 대표적 명소인 '왕궁-시티 팰리스'로 입장했다. 베르사유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화려하고 제법 규모가 큰 궁전이다. 이방인에게 공개된 공간은 적은 편이나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가득한 <중세>의 세력을 한껏 뽐내는 유물이라 할 수 있겠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반복 무늬, 조각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온 벽면에 꽉 차 있다. 타지마할의 정돈된 규율과 법칙은 아니었지만, 화려함으로 치자면 아쉬울 것 없이 이들의 자랑일 법한 정교함이 있었다. 방마다 다른 패턴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창틀, 그 사이를 자유롭게 메꾸고 있는 총천연색 스테인드글라스. 여러 색의 대리석으로 무늬를 만들어 넣은 모자이크, 신상으로 보이는 동물 조각들, 식물 문양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손길이 더해져 세월을 지나온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특히 벽체는 단조로울 새가 없을 만큼 무엇인가로 가득했다. 그 벽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세밀화도 독특한 이들만의 양식이었다. 액자에 보존된 작은 문서들부터, 벽면을 가득 메운 대형 그림들까지, 셀 수 없었다. 마치 모두가 누가 누가 더 정교하게 많은 내용을 그려낼 것인가, 하는 내기나 대회라도 있었던 것일까. 조선 시대의 ‘의궤도’만 보더라도 정밀함이 꽤 나타나 있어서 그 시대의 ‘기록 사랑’을 짐작하곤 했었다. 종교와 사상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필요했던 그들의 모습이 이방인인 나에게도 잘 느껴질 정도로 잘 남아있어서 왠지 고맙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세밀화를 보면, 그림으로나마 자신들이 아는 것을 ‘빛나게’ 전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심정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궁전 밖 야외로 나오니, 고위 계급의 결혼식이 예정된 듯 궁전 뜰 가득 휘장과 번쩍이는 장식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최상급 치장을 보고 있으니 현실의 장이라기보단 마치 영화 속 세트처럼 이질감이 가득했다. 준비는 매우 천천히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어 조금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 참고로 이러한 창틀 장식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더운 나라에서 그늘과 동시에 마련해주는 효과적인 양식의 하나였다. 작은 조각 사이로 공기가 통하고, 그늘을 제공해주며, 문살의 입체적인 조각으로 희한하게 내부에서는 외부를 관찰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렵게 되어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텔 마하라자 팰리스
2.
수량이 풍부한 이 곳의 호수는 우다이 싱이 강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였단다. 지금도 이 호수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음은 물론, 건기에도 물 걱정 없이 넉넉한 계절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통치자의 힘이란.
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에서 조금 더 인용해 본다.
17세기에 마하라자가 별장을 건설했습니다. 호수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흰 궁전은 현재 레이크 팰리스 호텔이 되었는데, 순백의 건물이 아침, 저녁 햇살을 받아서 핑크와 골드로 빛나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화 속 나라의 성입니다. 허니문에 꼭 권하고 싶은 호텔입니다."
- 인도 정부 관광국에서 발행한 서인도 소개 자료에 의하면 이렇게 적혀있다고 한다.
사실 우다이푸르의 명소라면, 마하라자의 궁전보다도 어쩌면 도시 가운데 널찍이 자리한 호수에 떠 있는 호텔이라 제일 먼저 이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수량이 풍부한 이 인공 호수는 이 도시의 이름에 유래가 되었던 제왕 ‘우다이 싱’이 강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였단다. 지금도 이 호수 덕에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건기에도 물 걱정 없이 넉넉한 계절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통치자의 힘이란, 이렇게 쓰는 거겠지.
호수 위의 호텔은 17세기 당시의 마하라자의 별장이었는데, 이제는 <레이크 팰리스 호텔>로 이름 붙여 운영하고 있다. 순백의 건축물은 호수와 하늘색을 반사하면서 빛나는 보석같이 -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끔 이 커다란 호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007 제임스 본드의 시리즈 영화 <옥토퍼시>에도 배경이 되었다고 하고 (게스트하우스 들에서 이 영화를 이벤트로 상영하곤 했다) 이슬람식의 구조와 유럽식의 장식을 섞어놓은 화려함이 인도 사람들의 최고급 ‘신혼여행용 숙소’가 될 법하다. 누구라도 혹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지만, 굳이 숙박까지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보트 투어로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호숫가의 작은 선착장에서 비싸지 않은? 요금을 내고 보트에 올랐다. 나름대로 구명조끼도 입히고, 호수 이곳저곳을 돌아 관광지 근처에 내려주는 코스다. 물가를 본디 즐기는 습성이 있던지라, 모터보트 위에서 물가를 스치는 바람을 맞는 흥겨움을 경험할 이벤트가 있다면 마치 자석이 이끌듯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세세하게 어떤 투어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출발하려는 모터보트의 몇 자리 남지 않는 좌석에 재빨리 올랐다. 보트는 먼저 호텔을 향해 직진 코스로 달렸다. 호수 한가운데 생뚱맞게 서 있는 이 호텔에 누군가가 내리는 걸 보니, 그저 서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라는 건 분명했다. 물속에 떠 있는 듯 동화 속 궁전 같은 호텔은 지는 햇살을 받아 다채로운 붉은빛으로 호수와 함께 물들었다.
다음 날 저녁, 이 우다이푸르의 아름다운 명소들을 좀 더 색다른 포인트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길바닥에서 함께 예술을 하던 '아트 스쿨' 동지들을 만나. 케이블카를 타고 해넘이를 보는 포인트로 향했다. 여럿이 뭉쳐 모터 릭샤를 나눠 타고 산기슭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유원지 마을로 함께 이동했다. 마감 시간 직전, 노을이 제대로 물든 호수 위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왕궁, 그리고 왕궁 같은 별장에서 내뿜는 조명이 점점 더 화려하게 도시를 밝히며 멋지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이렇게 조망을 보는,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지면, 마치 이 도시를 다 마음에, 기억에 담는 것처럼 풍성한 기억 정보가 생성된다. 유명하다는 관광지마다 앞다퉈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엘리베이터를 깎아 올리고, 산기슭까지 계단을 꾸역꾸역 지어 올리는 걸 보면 다들 같은 마음들이겠지. 어느 도시라도 이렇게 높이 올라 도시를 작게 축소하여 내려다보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어지러움은 슬쩍 지워지고 아름다운 반짝거림만 남아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는 사실이 재미있다.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와 보석이 함께 각인되는 조망은 어디서든 만나기 힘든 특별함이 있다.
돌이켜보니 우다이푸르에서 너무나 바쁜 일상을 보냈다. 오전엔 호수를 바라보는 숙소의 옥상, 테라스에서 짜이와 함께 일기를 쓰고, 한갓진 낮엔 그림을 그렸다. 이따금 공연을 보고, 박물관을 돌고, 주변의 공방 구경을 다니며 그들 삶 속에서 내 삶의 여유를 한껏 누렸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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