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투어
국경일의 뉴델리
뉴델리에 도착한 다음날은 인도의 독립기념일이었다.
아무래도 행동반경이 좁아진 탓에 몇몇 관광지를 정하고 큰 욕심 없이 마지막 도시를 감상하며 보내기로 했다. 먼저 만난 유적은 - 18세기에 만들어졌다는 해시계이자 천문대를 겸한 축조물인 <삼랏 얀트라>였다. 사실 큰 감흥없이, 대표 관광지로 표시되어있길래 들렀을 뿐인데, 눈앞에 보이는 조형물은 정말 특이한 형태의 입체, 이것은 건축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것 같은 용도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구조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추상조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옛 인도인들은 이 건축물로 눈금을 만들고 시간을 계측했다고 한다. 이 역시 타지마할의 그 ‘샤 자한’이 자이푸르를 비롯하여 총 5 도시에 유사한 해시계를 축조해두었단다. 뭔가 원리에 대한 해설도 충분했지만, 여전히 나는 지구과학과 물리는 자신이 없어 접근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라는데, 지구과학이라면 일단 좀 모른척 하고 싶은, 미술선생에게는 공간을 가르는 미니멀리스트의 조각처럼 보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걸 실감한다.
해시계를 돌아보고, 뉴델리의 이정표인 <인디아 게이트>를 향해 걷다 보니, 국경일 행사와 맞닥뜨렸다. 지하철의 일부 구간이 제한되어 어쩔 수 없이 걸었는데, 사람들의 즐거운 나들이길에 함께 걷는다고 생각하니 뭐, 그럭저럭 나도 흥겹게 걸을 수 있었다. 행렬을 지켜보니 낙타를 탄 군인들이 선두에 서고, 가족 단위의 ‘손에 손잡고’ 행진이 텅 빈 대로를 메우며 줄을 이었다. 이들의 ‘개선문’이라 할 수 있는,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앞에도 행사용 꽃장식이 그득하다.
국기가 휘날리고, 영국이라는 제국에서 벗어나 당당히 독립했던 그들의 자신감이 대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애국자 스타일은 아니지만, 독립의 역사를 경험한 국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자신감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은연중에 배어있던 자긍심이 흘러나와 뭉클한 동질감을 잠시 가졌다.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경건해지는 태도, 이런 것도 사실 내 철학에 의한 마음가짐이라기 보단, 교육에 의한 결과였을 거다. 사실, 이성적으로 따져들면 국가와 민족 같은 힘의 논리와 자주 결합하는 단어는 평소 좋아하지 않는데, (심지어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왜 꼭 본국만 응원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현실에선 이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여권을 들고 다니게 되는 바깥 여행을 나오면 종종 느낀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단어들이 나의 소속이자 정체성이 되는 카테고리는 사양하고 싶다. **나라 국민, 아시아인, 황인종, 여성인지 남성인지 – 이런 종류의 부여받은 단어와 그에 따라 분류되는 건, 내키지 않는다. 제대로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될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니.
남의 나라 애국행사를 보며, 할 말은 아니지만, 국가는 국가고, 사람은 다 제각기 제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한국 사람이나 인도 사람이나 국가의 힘에 칭송하는 시간 보다는 자신의 충실한 삶에 집중하는 편이 (오히려 국가를 위해서도) 나아보일 때가 많다. 독립기념일 행진에 나온 이 사람들은, 진심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신선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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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립현대미술관(NGMA)에서도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슬람의 건축, 힌두의 전통미술 등에 휩싸여 이 땅을 떠돌며 중세, 고대의 시대에 머무른 것 같았는데, 인도에도 현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발견했다. 그들의 옛 문화가 잔잔히 남아있는 화려한 채색기법이나 대담한 추상화들, 그런데도 서양의 현대적 조류를 무시하진 않은 듯, 개성 있는 몇몇 작품을 만났다. 동시대 인도 예술인들의 고민을 공감하게 되어 뜻밖의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여행지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간이 우연히도 이렇게 흐름을 탈 수 있어 다행이다.고대의 바라나시-중세의 아그라와 라자스탄- 그리고 현대의 뉴델리로 이어진 역사 여행을 한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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