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수술을 기다리며, 수술 전 6개월의 기록
많은 환자가 이 말을 싫어한다. 왜 착한 암이라 부르냐며 억울해한다.
‘착하다니,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아무렇지도 않은 병처럼 보지 마.'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조차도 '별거 아니래.', '왜 너만 유난이야?’라는 식으로 반응해서 안 그래도 힘든데, 마음까지 서럽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착한 암’이라는 별명이 좋다. 이 말을 되뇌다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수술 잘 받고 치료 착실히 받으면 되는 거야.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라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실제로 다른 암이나 중병보다 치료 과정도 비교적 간단하다. 무엇보다 가족과 지인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어서, 나는 이 별명이 좋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갑상선암은 그렇게 착하지 않다. 수술 이후 대단히 큰 후유증을 남기는 암 중 하나이다. 겉으로 티 나는 증상은 없는데도, 수술 후에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많다.
갑상선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기관이다.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고, 체온을 유지하며, 필요 없는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몸의 속도를 조율하는 지휘자 같은 기관이다.
이런 갑상선을 수술로 제거하게 되면, 호르몬 분비가 완전히 중단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양분이 에너지로 잘 바뀌지 않아 만성 피로를 느끼고
체온 조절이 잘되지 않아 더위와 추위에 예민해지며
불면, 무기력, 우울감 같은 증상도 뒤따른다
여성의 경우, 생리 주기나 양의 변화도 흔하다
그래서 수술 후에는 반드시 갑상선 호르몬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 (반절제 경우는 일정 기간만 복용) 하지만 이는 몸이 직접 만들어내는 호르몬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약물이다. 복용량이 많아도, 적어도 문제다. 각자 몸에 맞는 ‘적정량’을 찾기까지, 1년 이상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또 하나, 갑상선 뒤에는 아주 작은 기관인 부갑상선이 붙어 있는데, 수술 중에 이 부위가 손상되거나 제거되는 일도 있다. 부갑상선은 칼슘 대사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이곳에 이상이 생기면 손발이 저리거나, 감각 이상, 경련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렇듯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조용히, 오래 괴롭힌다.
<갑상선포럼> 네이버 카페에서 수술 후기를 검색하여 많이 읽어봤다. 많은 환우가 피곤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수술 후, 대체로 수술 전의 40~50%의 체력으로 살아간다는 후기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고 했고, 낮 3~4시만 되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기운이 쑤욱 빠져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체력을 두 배로 만들어놓고 수술을 맞이하겠어!
이미 임신과 출산, 육아로 체력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온종일 아기와 같이 있다 보면 에너지가 방전되곤 했다. 그러던 찰나, 수술날짜가 확정되었고, 운동할만한 아주 좋은 핑계가 생긴 것이다. 좋았어. 나는 바로 1:1 PT를 신청했다.
11월부터 매주 2회, 아기가 잠든 뒤, 밤 9시~10시에 PT 수업을 받았다. 수업을 가지 않는 날에도 집에서 틈틈이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였다.
매울 운동을 하다 보니 체력만 좋아진 게 아니었다. 몸이 달라지니 마음도 건강해졌다. 운동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기분도 상쾌하고 에너지가 솟았다. 스트레스로 막혀있던 내 안에 뭔가가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긍정 에너지가 솟구쳤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고, 2024년 2월쯤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체력이야.”라고.
20대 때도 느껴보지 못한 무한 체력, 그때 느낀 컨디션은 정말 놀라웠다. 수술? 이 정도 체력이면 끄떡없겠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든든함이 올라왔다.
수술 일정이 워낙 늦게 잡혀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갑상선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통증도 없었고, 특별히 주의해야 할 음식이나 생활 지침도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활기찬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다. 시간은 무난히 잘 흘러갔다.
드디어 2월 14일, ‘수술 전 검사’를 받기 위해 고대안암병원을 찾았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CT, MRI, 목 X-ray. 목소리 검사 등의 검사를 시행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검사결과 확인 및 수술 동의서 사인을 위해,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이번엔 박다원 교수님께 진료를 보았다.
가장 걱정했던 건 전이 여부였다. CT 결과, 다른 장기와 림프절에 전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후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이가 있으면 수술 후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림프절이 깨끗해 보이므로, 수술은 갑상선 및 갑상선 주변의 림프절만 예방 차원에서 소량 제거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후 약 30~40분 동안, 수술 진행과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 교수님이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부갑상선 관련
갑상선 제거 시, 갑상선과 붙어 있는 4개의 부갑상선은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붙어 있는 형태가 사람마다 다르므로, 다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수술 과정에서 손상을 입어, 일시적으로 칼슘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손발 저림이 생길 수 있으나, 빠르면 며칠 내 회복되지만, 6개월 이상 칼슘제를 복용해야 할 수도 있다.
성대 신경 관련
수술 과정에서 성대 신경을 건드릴 위험성이 있다.
사람마다 성대와 갑상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엔 갑상선을 떼어내면, 성대 신경에 손상이 생겨, 당장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목소리를 내는데 힘겨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수술이 단순히 제거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구나’하는 실감이 들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셔서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2월 19일부터 전공의 파업이 시작됐다. 이미 세브란스 등 주요 병원에서는 갑상서암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도 그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교수님, 전공의 파업 때문에 수술이 연기되지는 않을까요?”
“지금 저희 병원도 전공의나 인턴이 없어서 스케줄을 하루 이틀 뒤도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수술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수술은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김훈엽 교수님과 제가 수술 후 관리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부족함이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이를 양해해 준다면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수술은 할 수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간신히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대답을 하는 박다원 교수님 얼굴이 며칠 째 잠 못 이룬 듯한 피로감이 가득했다.
그렇게 수술 전 마지막 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보통의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수술날이 다가왔다. 어느 날,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드르르르르르르륵-
이상하게도 평소와 다른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발신자는 ‘고대안암병원 갑상선센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안녕하세요. 와초님 맞으신가요? 고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입니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3월 13일 수술이 연기되었습니다. 수술은 4월 19일로 변경되었고, 수술 전 검사는 다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네? 다시 3월 13일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나요? 아니면 4월 19일보다 더 빨라질 가능성은요?”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은 없고요. 4월 19일도 저희 교수님이 정말 힘들게 잡아놓은 일정이지만, 그때 가서 더 연기될 수도 있어요.”
온몸에 힘이 빠졌다. 거대한 검은 구름 떼가 스르르 몰려와 내 몸을 조여왔다. 그리고 나를 한없이 깊은 늪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그대로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화도 슬픔도 아니라, 정확히 절망이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지? 난 이미 4개월이나 기다렸다. 아니, 갑상선암을 발견한 건 9월 20일이니 기다림은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수술만 하면 다시 건강해질 거라 믿고, 그 희망 하나로 지금껏 버텼는데... 그 희망이 내동댕이쳐졌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결정, 누군가의 정치적 셈법이 지금 내 삶의 가장 절박한 날들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미쳤나 정말.
암환자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
화가 난다. 분노가 치민다. 이건 정말 아니잖아!
정치가 뭔데, 의료시스템이 뭔데, 환자의 목숨을 걸고 협상을 하나요?
나는 그날, 환자가 아니라 그냥 병원 명단에 찍힌 숫자 하나일 뿐이었다.
내 삶, 내 시간, 내 생존의 문제가 누군가에겐 아예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다른 병원으로 수술을 옮겨야 했다.
※ 매주 금요일, 이 기록을 이어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