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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Oct 11. 2021

ㅋㄷㅋㄷ

2014년 7월


"선생님, 이번에 준비하는 스토리는 좀 독특합니다. 전래동화의 현대판 버전에 타임슬립이 융합된 퓨전 판타지예요."


이럴 수가!

스스로의 눈이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카톡이지만, 내가 이 따위 표현을 쓰고 있다니.

영어가 뒤죽박죽 섞인 정체불명 문장, 엘레강스하게 즈질스런 김봉남류 문체.

전설의 레전드가 어둠의 다크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퓨전 타임슬립? 그런 얘기 요즘 너무 흔하지 않아? 자기, 생각보다 감이 좀 아쉽네. 재밌는 사람 같아 추천하려고 한 건데."


어, 이거 일이 꼬인다.

어떻게 잡은 기횐데!

놓칠 수 없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


"선생님, 다른 스토리도 준비해 놓은 거 있습니다. 이따가 뵐 때 시놉시스 보여드릴게요."


"글쎄, 그럼 일단 가져와 봐요. 그리고 자기 어투 너무 딱딱하다. 남들처럼 'ㅇㅇ'이나 'ㅋㅋ' 같은 것도 좀 써봐. 난 유머러스하고 감각 젊은 사람이 좋더라."


나에 대해 가진 호기심이 식어가고 있다.

호감이 시들기 전에 풀무질을 해야 한단 위기감이 들었다.


"네, 선생님. 저도 아직 젊어요. ㅋㄷㅋㄷ."


"자기 빠르다. 'ㅋㄷㅋㄷ'도 바로 쓰고."


오케이, 여기서 쐐기 유머 때려 박는다!


"그럼요. 저도 한창 땐 하루에 한 통씩 쓰곤 했습니다. 콘돔콘돔. 푸헤헷!"


"자기 지금 나 희롱하는 거지? 그게 나한테 칠 드립이야?"


"앗, 그게 아니라... 선생님, 죄송합니다. 유머감각 보여 드린다는 게 그만."


"그럼 나 유혹하는 거야? 이따가 올 때 그거 한 통 사와. ㅋㄷㅋㄷ."


이런, AC밀란!

이게 대체 뭐하자는 상황이야?

저 아줌마가 사람을 뭘로 보고!


그렇게 마흔 살 신씨 아저씨는 새벽에 카톡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공모전에 대한 압박감, 기러기아빠 생활에서 누적된 욕구불만이 표출된 기괴한 꿈이다.

얼른 밥 먹고 회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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