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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Feb 09. 2022

시, 닿을 수 없는 너

2014년 2월

글쓰기를 좋아한다.

수필이라 불리는 '사실상 잡문 나부랭이'를 가장 자주 끄적대고, 만화 대본과 칼럼도 종종 쓰곤 한다.

심지어 보도자료와 CEO 인삿말 쓰는 것마저 즐거울 정도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설렐 정도는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관념과 이야기가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 퍼즐 조각 맞추듯 재밌다.

처음엔 막막하지만, 얼개를 짜고 실마리를 잡으면 야릇한 흥분과 설렘을 느낀다... 만 그렇다고 작문 성애자는 아니다, 진짜라니까!


유독 쓰기 힘든 글이 있다.

바로 운문, 시다.

내게 시는 한국화 같다.

여백의 미가 두드러지는 글이다.

인간미가 메말라 그 감성을 찾기 버겁다.

운율과 리듬감도 내겐 영 머쓱하기만 하다.

한동안 기웃거리다가 결국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글이 마음에 울림을 준 일이 있었다.

울림이 깊어 저자를 알아보니 시인이었다.

시인의 산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체가 시였다.

움찔 놀랐다.

시는 격식의 글이라는 고정관념에 금이 가게 된 거다.

더불어 항상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날새는 내 글이 가여웠다. (ㅠ ㅠ);;


젠장, 대체 시는 뭐지?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믈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혔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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