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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Jun 01. 2022

[Name, 이름이 뭐예요~?]


강남구 개포4동과 서초구 양재동 사이에 ‘포이사거리’란 지역이 있습니다.

‘삼호물산 사거리’라고도 부릅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삼호물산이, 이곳에 회사 이름을 붙인 큰 건물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삼호물산 빌딩 바로 옆과 인근엔 동원그룹의 대형 사옥들이 여러 채 있지만, 아무도 ‘동원그룹 사거리’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미원그룹(현 대상그룹)이 빠져나가고 술집들만 그득한데도, 이름이 그대로인 여의도의 ‘미원빌딩’과 비슷한 경우죠.

초대형 건물 교보타워가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제일생명 사거리’라 불리는, ‘신논현역 사거리’도 떠오릅니다.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혹시 앞서 언급한 회사들의 이름 뜻을 생각해 보셨나요?

분명 훌륭한 의미를 담은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인지, 한글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삼호(三湖)물산, 동원(東遠)F&B, 대상(大象)주식회사…

‘세 개의 호수’ 삼호의 유래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동원은 ‘동쪽으로 더 멀리 나아가자’는 창업자의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큰 코끼리’ 대상이 친근하고 듬직한 코끼리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광고에서 코끼리를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걸로 봐선, 원불교를 믿는 사주가의 의지가 반영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현듯, 이름 뜻을 아는 기업체들을 열거해 봅니다.

현대사회의 현대, 별 셋 삼성, 큰 천하 대우, 럭키금성 LG, 코리아 나일론 코오롱, 제1의 설탕 제조사 제일제당 CJ, 젊은 베르테르를 슬프게 한 여인 샤를롯 롯데, 풍산 류씨가 세운 풍산, 남양 홍씨의 남양, 폭탄이랑 수류탄 만드는 한국화약 한화, 선만주단(조선에서 만든 직물을 만주로 판매하던 기업)과 경도직물(교토직물)에서 한 자씩 따온 선경(鮮京: SunkKyoung)의 이니셜 SK…


생각하셨던 대로인가요?

이름의 뜻을 알면, 대상의 목적과 특성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제 경우엔 이해도를 높이는 데, ‘What: 저 뜻이 무엇일까?’보다 ‘Why: 왜 저 이름을 붙였을까?’로 상상하면 도움이 되더군요.

더불어 한자나 외국어 원낱말의 뜻도 참조하면, 이해의 배는 급물살을 탑니다.

딱딱했던 암깃거리가 재미난 이야기로 바뀝니다.


한국사회에 한자나 외국어 기반 이름들은, 거리에서 교실까지 지천에 널리고 쌓였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국민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대한민국에, ‘가독적 문맹률’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해력(文解力)’이라는 고상한 말도 있지만, 적나라하게 표현해 봤습니다.

특히 한자교육을 아예 받지 않은 이들의 몰이해 정도는, 짐작보다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뜻을 모르고 발음적 느낌만으로 인식하면, 논리와 이해가 약해져 소통도 불편해집니다.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같은 언어철학자들은, 같은 단어에 대한 다른 해석이 오해와 갈등을 야기한다고 말했습니다.

소통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시간과 자산의 낭비요소들을 줄여 줍니다.

신속하고 원활한 소통은, 다치면 바로 치료받고, 목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순우리말도 좋지만, 한자나 외국어 교육도 중요합니다.

강요된 암기가 아닌, ‘이해하는 방법 대한 길잡이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이름은 ‘알려주다’, ‘가리키다 의미인 ‘이르다 명사입니다.

그렇게 뜻을 알고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꽃이 됩니다.

꽃을 피웁니다.


*이름을 뜻하는 영단어 ‘name’은 고대인도유럽어 ‘nomen’에서 왔습니다.

시상식에서 후보로 지명하는 ‘nominate’의 뿌리도 nome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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