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내가 왜 이 얘기를 시작했을까? 지금부터 세 시간은 족히 골치가 지끈거릴 텐데...
'돈 키호테(Don Quixote)'!
17세기 초,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쓴 장편소설입니다.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죠.
사람들 생김새 아주 다른 머나먼 한국에서, 1980년대에 TV 만화영화로 방영됐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내용이 일부 실릴 정도였습니다.
시대를 아우르는 명작입니다.
2002년 노벨연구소가 주최한 '전세계 유명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책'에서,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무려 50% 넘는 작가들이 돈 키호테에 투표했다고 합니다.
작품성이 탁월하고, 여러 세기 동안 대중에게 큰 인기를 모았기 때문일 겁니다.
순수문학의 한계를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고 부조리를 비판하며 대중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불현듯, 대한민국 최고의 명작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스칩니다.
돈 키호테도 순수 예술에 사회참여(앙가쥬망: engagement)적 스토리를, 환상적으로 버무렸습니다.
갑자기 웬 엉뚱한 소리냐구요?
우리는 지금 '돈 키호테'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작이 맞습니다.^^;;
기사도문학을 비판한 기사도 배경의 작품입니다.
먹고 살기 빠듯한 시대에, 일은 안 하고 빌붙어 먹고 사는 기사 계층.
이 놈팽이들이 주구장창 여자들한테 껄떡대는 모습을 찬양하고 부추기는 기사도문학에, 세르반테스는 냉소를 보냅니다.
바로 똘아이 기사의 기행을 통해서요.
나름 그럭저럭 살던 시골 귀족 노인 알론소 키아노가, 갑자기 스스로를 기사로 셀프 임명합니다.
여러 지역을 떠돌며, 좌충우돌 똘기충만 기사모험을 이어갑니다.
함께하는 캐릭터들도 기억하실 겁니다.
명마 로시난테, 충직한 수행원 산초, 고귀한 연인 둘시네아...
오늘은 돈 키호테 캐릭터들의 이름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돈 키호테(Don Quixote)
본명은 알론소 키아노(Alonso Quixano).
알론소의 의미는 '고귀함을 갖춘 사람'입니다.
Don의 뜻은 'master', 'lord', 대략 '~경'이나 '나리마님'입니다.
Quixote는 'thigh', 'cuisse', 즉 '허벅지' 혹은 '허벅지 갑옷'입니다.
튼실한 하체는 '탁월한 남성적 에너지'를 뜻합니다.
'허벅지 경' 돈 키호테는, 사실 '슈퍼 정력 나리'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알론소 키아노는 예순 무렵에 접어든 노인이었습니다.
그가 '키아노'라는 성을 발음이 비슷한 '키호테'로 바꾼 이유는, 현실의 나이와 신체 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였다고 추측해 봅니다.
2. 로시난테(Rosinante)
로시난테는 노쇄한 말 rocin과 before를 뜻하는 antes의 합성어입니다.
'진작부터 낡은 말', '상늙마(제가 갖다 붙인 말)'입니다.
"달려라, 상늙마!"
"돌격, 노인네!"
이 장면을 상상하면, 긴장감과 웃음이 함께 찾아올 겁니다.
3. 산초 판사(Sancho Panza)
이베리아 이름 Sancho는 라틴어 Sanctus에서 왔습니다.
'성스럽고', '거룩하고', '축복 받은' 존재를 일컫습니다.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 Sanchez는 산초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일반명사 sancho의 뜻은 돼지입니다.
panza 또한 '불룩배'와 '창자'를 뜻합니다.
통통하고 적당히 속물스런 아저씨 모습이 떠오릅니다.
같은 철자 단어로 정반대 성향을 함께 버무린 장난기가 느껴집니다.
"내게 창을 주게, 고귀한 자여."
"창 갖고 와, 돼지야!"
4. 둘시네아(Dulcinea)
여관에서 일하는 힘 세고 걸걸한 여성입니다.
돈 키호테가 고상하고 아름다운 귀부인으로 상상을 입히고,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연모합니다.
실제로는 제대로 만나지도 못합니다.
원래 이름은 알돈사 로렌소(Aldonza Lorenzo).
알돈사의 뜻은 '착한 성품'입니다.
보통 아기들에게 붙인 이름이죠.
둘시네아는 달콤하다는 뜻의 라틴어 dulce에서 왔습니다.(네스카페 '돌체 구스토'도 이탈리아어로 '달콤한 맛'이란 뜻입니다)
'사랑스러운 여인'이란 의미로, '드높은 이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알돈사는 아기에게, 둘시네아는 성숙한 여인에게 걸맞는 이름입니다.
동네에서 통나무를 가장 멀리 던지는 걸걸한 떡대 아줌마 이름이 '깜찍이'에서, '현애'로 바뀌는 셈이죠.
둘시네아 역시 현실세계를 비튼 이름입니다.
둘시네아에 대한 돈 키호테의 마음은, 실존하는 연인에 대한 흠모가 맞을까요?
본인의 위대한 이상에 대한 집착의 결정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돈 키호테' 등장 캐릭터들은 의미 있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뜻을 알고 작품을 보면, 이해와 재미가 크게 올라갑니다.
'포레스트 검프(gump: 바보, 모질이)'가 '바보 포레스트'이고, '잭 스패로우(sparrow: 참새)'가 '참새 잭'이란 걸 알고 영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최고의 명작 '돈 키호테' 정주행 어떠신가요?
1,700페이지 분량이라지만, 예전부터 많은 내용을 예습하셔서 술술 완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 추석 때 도전해 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
*맺음말: 으악, 세 시간이 아니라 여섯 시간도 넘게 걸렸습니다. 출근준비까지 세 시간 남았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