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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스틱 기러기

2017년 11월

by 어풀

"아빠가 언제 가장 보고싶어?"


난 기러기아비다.

그것도 외국기러기는 비교도 안 되게 드물다는 국내 (domestic) 기러기다.


아이가 아팠다.

첫돌이 오기 전 아토피가 왔고, 천식, 가와사키 같은 녀석들이 식구처럼 들러붙었다.

가장 무서운 건 고열이었다.

천식과 감기엔 항상 40도를 웃도는 높은 열이 따라왔고, 그런 날 새벽엔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삼성의료원으로 달리곤 했다.

몇 달 사이 내 가족은 응급실 단골손님이 돼버렸다.

내 국민학생 시절, 급우들 중 지능이 몇 해 더 어린 시절에 머문 가여운 아이들이 있었다.

고열이 뇌에 영향을 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아이를 아내와 함께 아내의 집으로 보냈다.

처가는 전라남도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었고, 공기가 맑았다.


조금만 지나면 좋아지겠지, 시간이 흘러 면역력이 강해지면 괜찮아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찾아오는 질환의 가지수는 늘고, 있던 병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조금 나아져서 서울에 오면 감기와 고열도 따라왔다.

그렇게 오고 가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이르렀다.

그리고 선택했다.

서울집을 정리해서 처가 근처에 집을 얻어줬고, 난 어머니댁으로 들어왔다.


자주 보지 못했다.

천만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바빠서, 아이가 아파서, 멀어서, 곧 다시 올 거란 기대에...

돌이켜 생각하니 핑계다, 비겁한 변명이다.


작년 여름휴가 시골에 내려갔을 때, 5학년이었던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언제 가장 보고 싶어?"


생일, 소풍날, 어린이날 같은 때를 짐작해, 용돈을 두둑히 건넬 생각이었다.


아이는 읽고 있던 책에 시선을 맞춘 채 쓸쓸히 대답했다.


"매일 매일 보고 싶어요. 매일 매일..."


그 말이 아직 가슴에 머문다.


어제 아이가 수학여행 다녀왔다고 전화를 했다.

수원화성과 에버랜드, 전주 한지박물관을 찾았다고 한다.

변성기가 온 목소리에 제법 울림이 있었다.


"재밌었어? 아빠가 가보고 싶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그리고 전 아빠 매일 보고싶어요."


덩치가 커졌어도 아직 내게 '못된 꼬맹이'다.

몸과 마음이 더 자라면, 매일 보고 싶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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