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강, 스무 살

2017년 3월

by 어풀

1995년 7월, 만 스물 생일이었습니다.

평소 철수세미처럼 까끌까칠한 성질머리와 큼직빵빵한 대갈머리 덕에, 경험한 연애라곤 “싸뢍해요, 연애가 중계”가 다였습니다.

사내녀석들만 축하해 준다고 모였습니다.

소보루, 진바리, 기철이, 상훈이~


늘 그렇듯 술을 마십니다.

생맥주가 식도에 굽이치고 미래에 대한 한숨이 깊어질 무렵, 뭔가 아쉽습니다.

이 여름이 지나면 군대에 끌려가는데, 그 전에 매혹적인 이성과 가슴 뭉클한 추억 하나는 만들고 싶습니다.

아쉬운걸... 아쉬운 Girl! ㅠㅠ


성내역 주민 소보루가 말을 꺼냅니다.


"한강에서 맥주 마시고 있으면, 여고생들이 같이 놀자고 말 건대. 내 친구 중에 그렇게 사귄 애들도 있어."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잠실 한강둔치로 향했습니다.


노래방 새우깡 두 봉에 맥주 한 짝을 나눠마시는 동안, 다가온 생명체라곤 떠돌이개와 모기, 나방이 다였습니다.

여고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느라 한강변에 나오지 않은 듯했습니다.

어느새 검푸른 강물에 여명이 움틉니다.


"날 샜다. 집에 가자."


“이게 뭐여~!”


"야, 소보루. 그런데 한강에서 헌팅 당했다는 니 친구 잘생겼냐?"


"좀 그런 편이지. 아니구나. 그 정도면 미남이야. 좀 많이."


"부럽다. 좀 많이. 빌어먹을 자본주의~"


“돈이라도 많이 벌자. 돈 많이!”


“배고프다. 라면 먹자.”


부드러운 새벽바람이, 이목구비 겸손한 벗들의 어깨를 다독입니다.

20대의 둘째 날이 눈을 뜹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메스틱 기러기